나가사키의 기억
- 기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
우라카미 천주당
우라카미 천주당(폭심지에서 약 500m)은 1914(다이쇼 3)년에 2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했습니다. 당시 동양 제일의 대성당이라고 했지만, 원폭으로 종탑 돔은 날아가고 약간의 벽만 남은 채 무참하게 붕괴되었습니다. 여기에 모여 있던 신자는 모두 사망했습니다.
폐허의 우라카미 천주당에 서 있는 성마리아 동상과 성요한의 동상(폭심지에서 500m)
1945(쇼와 20)년 촬영/미군
어머니의 묵주
이데 미사키 씨의 어머니는 8월 9일 아침에 일로 폭심지에서 약 600m 떨어진 우라카미 천주당 근처의 친척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원폭 투하 후, 이데 씨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친척 집으로 가다가 우라카미 천주당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친척 집에서는 묵주를 발견했지만, 유리 묵주는 엿처럼 녹아 있었습니다.
이데 씨는 이 묵주를 어머니 유품으로 늘 소중하게 지니고 있었지만 40년이 지난 후 묵주는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기증되었습니다.
기증/이데 미사키 씨
나가이 다카시 씨
나가이 다카시 씨[1908(메이지 41)년- 1951(쇼와 26)년]
나가이 다카시 씨는 조교수를 지내던 나가사키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서 피폭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폭 직후부터 부상자 구호나 원폭 장해 연구에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그 후 그의 생각은 의사로서의 역할에서 나가사키의 마을과 문화 진흥, 그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것으로 넓혀져 갔습니다.
피폭 이전부터 앓고 있던 백혈병이 점차 악화되는 가운데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나가사키의 종’, ‘멸망하지 않는 것을’, ‘이 아이를 남기고’ 등 많은 서적을 집필하여 평화에 의한 인류의 행복을 진지하게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평화를’
나가이 다카시 씨가 평화에 의한 인류의 행복을 진지하게 바라는 마음을 써내려간 책, 1,000권을 지인이나 세계 각국에 보내 평화를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