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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불의 분화에 대하여 ​​세계 최초로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어 40만 명이 희생이 되었다. 그 중에 10만 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합니다만, 실로 그 원폭에 의해 많은 집들이 불탔다. ‘언젠가 이 원함을 풀고 말거야’라고 하며, 일본인 야마모토 타츠오씨가 자택에서 그 불을 계속 지켜왔다. ​그러나 20년이나 지나고 보면 ‘원한의 불’은 ‘인간은 서로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반전 평화의 불’로 되어, 야마모토씨가 사는 큐슈, 후쿠오카현의 호시노 마을이 관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일본의 각처에 전해져, …
원폭의 기와 ‧ 꽃 ‧ 불에 대하여​​​원폭의 기와​​세계에서 처음으로 원폭투하를 당한 곳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입니다. 에놀라 게이라는 폭격기가 비행고도 약 9,000m에서 원폭을 투하하여 43초 후에 폭발했습니다. 폭탄 중심 온도는 25,000도, 0.2초 후엔 불공의 직경이 310m가 되고 표면온도는 6,000도이었으며 3,000도 전후의 열풍이 일어나 최대풍속 초속 440m라는 속도로 휩쓸고 지나가 그 압력은 폭심지에서 1㎡에 35톤이라고 합니다. ​폭심에서 반경 2km 내 지역에서는 열폭풍으로 목조 가옥은 대…
​원폭기와에 대해서 ​​​(니시무라 이치로 씨 설명)                                       ​1. 원폭기와란?70년 전의 오늘, 미국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사상 처음으로…
원폭의 굉장한 위력을 알자​​솟아오르는 버섯 구름(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원자폭탄 투하)​​1945년 8월 6일, 남태평양에 티니언이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B29라는 대형 전투기 4대가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한 대는 기후관측을 위한 것이고 두 대는 원폭 투하 후에 어떻게 되는가, 그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며, 에놀라이 게이(파이로트의 어머니의 이름을 땄음)기는 「리틀 보이」라고 불리는 원자폭탄을 싣고 있었습니다.​고도 약 1만 미터, 이 높이에서는 일본의 고사포라도 저격할 기술은 없습니다…
조선 사람들​​나가사키 상업학교 보국대 농작업(나가사키)식량이 부족해지자 교정 등에도 농작물을 심게 되어 학생들도 농작업을 했습니다.1942~1943(쇼와 17~18)년 무렵.  제공/나가사키 피폭 사진 조사회​[사진은 글 내용과 관련없습니다.]​​1945년에는 일본에 있던 조선인은 2백만 명이라고 합니다.​​이것은 전쟁 지역이 넓어지고 심해지면서 군기 만들기, 식료품 만들기, 도로 건설,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일할 사람들이 얼마든지 필요했습니다.​그래서 「국가 총 동원법」을 가결하여 정부는 종이 한 장으로 …
한국 피폭자에게 이해를 한국원폭평화전시관​원폭이 투하된 지 10일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광복절을 맞이합니다. 여기에 비하여 일본의 대 도시는 어느 곳이나 모두 불바다로 되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한국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가자!! 조국으로 가자!!​겨우 고생 끝에 돌아온 그리운 내 조국, 내 고향 땅, 이 넘치는 기쁨과 함께 피폭자의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첫째는 피폭으로 인한 게로이드 상태는 나병환자라고 착각하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두 번째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
 ◉한국원자폭탄피해자들의 참상을 생각하며......​​ 원폭피해자에 대한 정의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국에 의해 투하된원자폭탄에 피폭되어 피해를 입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1945년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와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는데 그 당시 사망자수는 히로시마에서 14만명 나가사키에서 7만 명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때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7만 여명 이었고 이중 4만 여명이 폭사하고 3만 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7천여 명은 일본에 잔류하고…
韓國人 原爆犧牲者의 悲哀(한국인 원폭희생자의 비애)​처음에..     2015년 8월 우리나라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일본으로부터 독립된 축하의 날이지만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생각조차 떠올리기 싫은 피폭을 당한지 7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이 70주년에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하려고 한다.  「왜?」 「어떤 이유로?」  지금부터 이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여러분은 원폭의 무서움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일본의 히로시마에 단 한 개…
미약한 국력의 비애와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비애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와 한국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사이에 8개의 조약이 조인되었다. 그리고 8월 29일 황제의 어새를 날인케 하여 「경술국치(한일합방)」의 조약이 반포되었다. 이로서 조선왕조는 519년 만에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제1조가 「대한국 황제폐하는 전 한국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영구적으로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이 한일합방은 한국의 왕궁인 덕수궁에서 순종황제 …
김달수(金達壽) 씨의 경우  한국에 흥미를 가진 일본 사람이라면 김달수 씨를 알고 있을 것이다.  김달수 씨는 소년시대에 일본에 건너가서 수십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한 사람으로 일제 강점기 피압박 민족의 서러움과 고통을 소설로 출판하고 또 유명인사와 대담으로 유명해진 재일교포 작가이다. 여기서 김달수 씨의 반평생을 소개하겠다.​  한국에는 「신세타령」이라는 슬픔을 딛고 극복하는 체험기가 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자기의 운명을 울면서 말을 하는 체험기」라고 한다.이것은 특히 조선시대의 여성에게…
피폭 20년의 한국과 일본​   1945년 8월 6일, 그 날 히로시마에 있었던 사람들은 41만~4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원폭이 투하되고 겨우 10초 만에 이 대도시는 붕괴되었다.  그 후 69년이 지난 2014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해 돌아가신 피폭자는 5천5백7명으로 지금까지 모두 29만2천3백2십5명이 사망하였으며 일본에서 피폭수첩을 가지고 있는 생존자는 19만2천7백십9명으로 총 피폭자수는 48만5천4백4명이 되는 셈이다.​  이 숫자에는 당연히 한국 피폭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일…
천(天)의 때라는 비애  한 인간이 또 하나의 집단이나 사회가 발전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성취하는 조건 중 하나로 “천(天)의 때, 땅의 이치, 인간의 화합”을 얻는 소중함이 있다.  한국피폭자가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설립했다는 것은 피폭 이래 20년,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이제 겨우 “인간의 화합”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 피폭자들은 이 인간의 화합을 얻고 일본처럼 국가나 사회로부터 사법계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점도 일본의 사례와 …
  따뜻한 빛을 받지 못하는 비애    한국에서는 피폭이라는 실체를 모르니까 피폭으로 인해 상처에서 나오는 켈로이드 증상을 나병환자 증상으로 오해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폭병이나 나병은 사회의 이해가 없으면 차별적인 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봉사활동 태양회는 20년 전부터 피폭자 중심의 사회봉사활동을 해왔지만 한국 태양회 회원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태양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인 원…
과오를 되풀이하지 마라 ​  ‘편히 주무십시오.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    이 말은 히로시마 원폭기념관에 가면 맨 처음에 볼 수 있는 비석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이 비석문의 필체는 히로시마 대학교 사이가 다다요시교수가 쓴 것이다. 내가 이 비석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 (50년대 중반)이다. 원폭투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히로시마에 처음 간 것은 34세 …
​과오를 반성하다  정경모 씨가 쓴 ‘어떤 한국인의 마음’에 1970년 12월 서독의 빌리 브랜트 수상의 사과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이 사과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이질적인 문화, 종교를 가지는 민족이라고 한곳에 모아 격리 거주시켰고 그 곳을 ghetto(게토)라고 한다. 1940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수도 바르샤바에 유대인 38만 명이 사는 게토가 있었다. 여기서 하루에 수백 명의 유대인이 독가스실로 가게 되었고 수십만 명이 비참한 죽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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