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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평화전시관 안내도 

 





 


 

 


한국 원폭 전시관 안내서

 

여러분, 원폭 전시관에 잘 오셨습니다. 전시관은 보시는 바와 같이 협소한 공간으로 설명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여러분에게 원폭에 대한 사실을 더 잘 알려드리기 위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전시관은 원폭의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꼭 이 안내서를 일독해 주십시오.


 

 


 

위령비(慰靈碑)

일본의 피폭자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곳을 넓은 공원으로 만들어 두고 그곳에 여기에 쓸 수도 없는 많은 원폭에 관한 기념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상징적인 것은 히로시마는 원폭 돔(원폭에 의하여 파괴된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 이 건물은 191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축가 얀레츠루 씨에 의하여 세워진 당시로서는 신기한 원형돔 형식의 건물이고 지금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음)입니다.

나가사키는 큰 평화상 앞에 모여 원폭이 떨어질 때의 상황을 말하면서 반전, 반핵, 세계 평화를 맹세하며 호소하는 장소로 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피폭을 당한 지 25년이 지난 1970년에 히로시마에 한국인 원폭자 위령비」를 한국에서 만들어 세워두고 재일 한국인 피폭자는 86일이 되면 향을 피우고 영령을 위로하고 또 하얀 한복을 입은 여성이 영혼을 편안히 잠들게 하기 위하여 살푸리 무용을 합니다.

나가사키는 1979년에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요?

제가 처음 알게 된 것은 합천에서 위령 추도제를 올릴 때 장소가 없어 그때마다 적당한 장소를 빌려 작은 책상 위에 작은 위패를 세워두고 그 앞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같이 한 곳에 모여 추도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는  각 지부에서 추도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합천 등은 버스 운임이 없어서 참가하지 못하는 분이 거의 반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인원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외부에 호소할 힘도 적어집니다. 만약 서울에 전 지부가 모여 추도식을 한다면 아마 천 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영령들을 편안히 잠드시도록 위로하고 이런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전쟁 반대와 평화를 호소하면 피폭자의 현실, 피폭 단체로서 지향하는 것을 사회는 더욱 잘 알게 될 것이고 이해해 주는 분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힘으로 되어 갑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70년 동안 한국 피폭자에게 위령비 하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로시마에 있는 재일 한국인의 위령비는 토대는 거북이이고 머리는 용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는 네모난 형태입니다만 한국에도 히로시마 형태로 하고 싶어 몇 번이나 석재상에 가서 일본과 같이 높이 5미터, 무게가 10톤 되는 웅장한 위령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1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일본과 같이 원폭 2, 3세가 육성되지 않은 한국에서 만약 인기척이 없는 산속에 세운다면 20년 지나면 1년에 한 사람도 향을 올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령비가 크면 클수록 처량하게 울지도 모릅니다.

위령비 건립 부지가 34번 변경되어가는 동안에 결국 한국 원폭 피해자 협회 옆에 전시관을 만들어 그 안에 위령비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석재는 이탈리아 산 오석으로 높이 2m 무게 400kg이고 글은 2004년에 한국에 귀화하신 태양회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高橋公純) 님이 쓰셨습니다.

 


 

위령구비(慰靈句碑) 

히로시마의 위령구는 편안히 잠드소서. 다시는 이런 잘못이 없으리다.입니다.

이 문안도 글자도 히로시마 대학 교수였던 사이카 다다요시(齊賀忠義)님이 쓰셨습니다. 이 말은 원폭 위령구로서는 제일 알맞은 말이라고 오래 동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 안에 들어가 보고 이 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당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처참한 것인데 원폭이라는 근대 과학 무기로 죽음을 당하는 것은 그 얼마나 비참한가를 기념관 안에 들어가서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히라오카 케이(平岡敬) 전 히로시마 시장은 젊은 시절에 기자로서 한국에서 태어난 히라오카 님은 한국에도 종종 오셔서 피폭자를 취재하고 한국 피폭의 실태를 아시는 제일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피폭의 실태는 알고 있지만 피폭의 경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취재하고 성의를 다하여 글로 표현해도 당신은 피폭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원폭이 작열한 순간의 온도는 30만도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50도 열탕에도 견딜 수 없는데 30만도란 어떤 것일까요? 실로 일순간에 인간의 몸은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86일 순간적으로 죽은 약 4만 명의 한국 사람은 편안하게 잠들 수가 없지 않을까요. 또한 조국에 돌아온 약 35천명도 원폭에 관한 전문 병원 하나 없이 한국에서 원통하게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 영령들을 위로하는 말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격전지에 있는 위령구를 생각해 보았지만 피폭지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에게 알맞은 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국가, 그리고 사회. 의학계가 전력을 다하여 큰 불행 속의 작은 행복을 주었지만 한국인 피폭자에게 국가도 사회도 모두 따뜻한 손을 내밀지 못한 상태여서 일본 피폭자보다 훨씬 더 큰 슬픔과 괴로움을 이겨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받은 쓰라림과 괴로움을 앞으로 세계의 어떤 사람도 경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괴롭지만 쓰라리지만 그 원통한 마음을 평화의 마음으로 돌려야 된다는 마음이 없으면 원함은 되풀이되어 이 세상에 남게 됩니다.

쓰라리지만 원통한 마음을 평화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나갑시다. 그리고 이런 일을 피폭자 분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오랜)슬픔을 딛고 넘어 분노를 평화로 그 마음 거룩하도다.입니다.

()의 문화론을 가진 한국, 앞으로 국가의 변혁에 한의 문화론을 평화의 문화론을 발휘시키는 일이 큰 열쇠가 되지 않겠습니까?

   

 



평화의 종 

히로시마의 평화공원 안에는 평화의 상」 「평화의 샘」 「평화의 연못」 「평화의 등」 「평화의 석탑」 「평화의 기념비」 「평화의 문그리고 평화의 종이 있습니다.


종이라는 것은 구경 1미터, 높이 2미터 정도의 큰 범종으로 되면 2키로 미터까지 종소리가 울려 퍼져 마음에 아름답게 스며듭니다.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는 아침 815분입니다. 히로시마는 매년 86일이 되면 어린이 2 명이 종을 운반하여 그 종을 치면서 묵념을 하고 추도식이 시작됩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묵념을 하는 것은 너무나 엄숙한 분위기이고 일본의 태양회에서 종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한국 원폭 협회에 전했습니다. 원폭 협회에서는 대단히 기뻐하시며 우리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추도식 장소에 운반하려면 가능한 한 가벼운 것으로 20kg까지 해 주십사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성종사에서 무게 20kg의 종에 평화의 종을 부각하여 제작했습니다.

 

 


위패 안치의 함 

태양회는 3년 전에 6폭의 병풍과 큰 위패와 큰 불구를 피폭자에게 기증했습니다. 1997년에 합천에 위령각을 건립하여 기증하고 그 내부에 안치할 위패를 다카하시 이사장께서 421명의 피폭 사망자의 위패를 써서 안치하였고 그 후 20여 년 동안 약 1천 명 가까운 위패를 써서 안치하였습니다.


이것은 합천이라는 한 지부의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지만 피폭자 중앙본부 전체라면 위패를 안치할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지 노트에 붓으로 사망자 명부를 써서 위패 안치함을 만들어 86일에 위패와 명부를 안치하도록 했습니다.


이 위패 안치함은 한국에서 제작하여 종교법인 일련정종 대만 연엽회에서 기증했습니다.

위패 안치함에 위패와 사망자 명부를 넣으므로 금장구를 많이 사용하여 중후함을 살렸습니다.

   

 


위령서(慰靈書) = 고향영안(故鄕靈安) 

전시관은 아무리 넓어도 협소해도 한국에는 원폭에 관한 전시물은 하나도 없고 모두 일본에 의뢰하기 때문에 일본의 여러곳을 타진해 보았지만 70년의 세월이 흘렀고 피폭의 유품은 대단히 귀중한 것으로 되어 있어 간단히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망향의 동산입니다. 이곳은 일본에 가서 일본에서 돌아가신 연고가 없는 한국인의 유골을 안치한 묘소가 망향의 동산입니다.

그 내부에는 1983년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게 폭격을 당하여 희생된 대한항공기 269명의 명복을 비는 위령탑이 있습니다.

해저에 침몰되어 유골마저 돌아오지 못한 영령들입니다.

무연고 한국인 합동 묘이런 것이 일본의 각 현 단위로 여러 곳에 있습니다. 히로시마현에 삼차 일한친선협회가 있고 삼차 시는 히로시마시와 가까워서 피폭자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45년의 일본의 패전 당시에 한국인은 일본에 230만 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일본을 영주지로 삼은 사람이 몇 명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논밭, 집까지 팔고 왔기 때문에 광복절을 맞이해도 돌아갈 집이 없어 고향의 산천을 생각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수십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피폭을 당하여 목숨은 무사했지만 손발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거나 뇌를 손상시켜 판단력이 전혀 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몇 명 있다고 책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어도 인간은 고향만은 생각한다고 합니다.


한국인 중에서 피폭을 당하여 재로 변하여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의 모습으로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향의 사람들과 아무런 연락도 없어 유골을 모셔갈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위령비가 세워졌기 때문에 영령들이여. 이곳에 와서 편안하게 잠드소서 라는 마음으로 고향영안4글자를 쓴 것입니다.

   

 



원폭 기와 

히로시마시에는 6개의 강이 흐르고 있고 피폭지에 제일 가까운 강이 모토야스(元安)강이 있습니다. 1초 동안에 400미터나 날아가는 폭풍에 의하여 당시 순일본풍의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날려가 강에 떨어진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도로에 떨어진 것은 수년 동안 정비되어 기와 조각은 전혀 없어졌지만 강에 떨어진 것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바다는 3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바닷물은 밀물 썰물에 의하여 수위가 약간 다르지만 썰물일 때 강에 들어가면 가끔 원폭으로 날아온 기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사회복지에 열심인 니시무라 이치로 씨는 86일 히로시마에 가서 모토야스 강에서 찾아왔다고 3개를 받았습니다.

그 중 한 개가 이번에 원폭 기와로서 니시무라 씨가 피폭자 협회에 기증했습니다. 방사능 원소 스트로노츔 90이나 세슘 137이라면 이미 벌써 강물에 씻겨 흘러내려 없었졌을 것입니다.

현재 원폭을 말하는 유품으로는 원폭 기와뿐입니다. 이 원폭 기와만으로는 원폭의 무서움을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반 기와는 망치로 두드리면 깨지는데 원폭 기와는 폭풍에 의하여 가루로 되었고 세찬 열풍에 맞아서 부서졌기 때문에 이 기와를 통하여 원폭의 무서움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평화의 종이학

 이 종이학에 관하여 관내에 별지로 자세하게 써 두었으니 읽어 보십시오.

처음에 이 종이학은 스리랑카의 초등학생 280명이 만들어 가지고 와서 원폭 3세의 어린이에게 기증하게 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초등학생은 올 수가 없게 되어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파모다 구네라트네 부 대사님께서 직접 오셔서 기증된 평화의 종이학입니다.

   

 



포스터

히로시마의 원폭 기념관은 두 번 다시 원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무료로 포스터 30매와 DVD, CD 그리고 책 3권을 기증해 주었습니다. 포스터는 코팅을 하여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히로시마 기념관은 세계에 원폭의 무서움을 호소할 사명에 서서 세계의 수 개 국어로 번역한 포스터가 있어 신청을 하면 어느 나라 말을 원하십니까?라는 신청 항목이 있습니다.

한국어라고 기록하면 그대로 한국어로 된 포스터가 30매 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한글로 된 책이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까지 일본에 맡기면 안 되니까 한국 사람이 더욱 더 노력하여 한국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만들어 갑시다.


히로시마 기념관에서 보내온 책은 피폭 상태의 그림을 모은 책으로 사진보다 더 원폭의 생생한 무서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료 팜프렛 등은 지참하셔도 좋습니다만 귀중한 책이니까 관내에서만 보시고 외부에 지참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 잘 부탁드립니다.

 

DVD에 대하여 

사진, 그림도 좋지만 박력이 있습니다.

보시고 싶으신 분은 원폭피해자 협회 사무실에 문의해 주십시오.

상영 시간 00분 (조사가 필요합니다.)

   

전시관에 대하여

 20149, 내년은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세웁니다.라고 발표할 때 전시관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5년에 접어들어 서울시에서 위령비의 건립 부지와 원폭 기념관 이야기가 나와서 한동안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만약 시에서 건립부지, 기념관을 제공해 주신다면 건립지에 따라 위령비의 크기와 부수적인 건립물 등이 정해집니다.

그것도 기념관으로 된다면 시에서 제공하는 것은 클 것으로 시에서 전면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올해는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태양회는 이 이상 더 미룰 수는 없고 올해는 70주년이기 때문에 반드시 위령비를 세워야만 했습니다. 일본, 대만 관계자와 긴급히 연락하여 나의 건물 1층에 20평 정도로 한국 원폭 전시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일 불행한 경험을 한 피폭자께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분이 살아계실 때 자신이 태어난 고국 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는 신뢰의 두 글자를 남기기 위하여 이 전시관이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전시관에 오신 분들은 피폭자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201586

  한국원폭평화전시관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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