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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11) 히라오카 타카시(平岡敬) 선생의 내한과 보도진

관리자 2019-10-11 (금) 19:12 2년전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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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히로시마 시장이신 히라오카 선생님(전시관에서)>


 5월 8일에 일본으로 출발하기 3일 전에 전 히로시마 시장이신 히라오카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5월 20일에 서울에 용무가 생겨 용무 끝내고 한국원폭전시관도 관람하시겠다는 연락이었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히로시마 시장을 두 번 재직하시고 세계를 다니시며 핵무기금지、반전을 호소하고 있는 분이다. 원폭평화전시관은 한국에서 유일한 원폭전시관이지만 이름은 거창할 뿐 히로시마 원폭자료관의 화장실보다 협소한 전시관이다. 한국에는 원폭의 유품이 없다. 겨우 깨어진 기와뿐인데, 원폭을 너무 잘 아시기에 전시관을 방문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도 있다.
20일 오전 중에 갑자기 청년극장의 후쿠야마 게이코 씨 외 2명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는 동안에 히라오카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명이 5~ 6명으로 되고 마지막에는 보도진 13명과 함께 오셨다. 히라오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5, 6분 지나자 교수이며 주간 수요일 기자이신 우에무라 타카시 씨가 대표로 40분 동안 나와 인터뷰를 했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일부러 일본 보도진을 데리고 한국원폭 전시관을 방문해 주신 것은 한국원폭 전시관을 일본에 알리고 싶었다고 하신다. 인터뷰가 끝나고 바쁜 일정으로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셨다.   
한국원폭전시관이 처음 개관되었을 때,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지키는 모임의 회장이신 이치바 준코(市場淳子) 씨가 한국원폭협회사무실에 오셨을 때, 나는 히라오카 선생님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이치바 씨의 ”잘 계십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전시관 소식지인 무궁화 3호를 히라오카 선생님에게 보내 드렸다.
이 3호에 한국왕실의 육군 중좌、이우 왕자가 원폭으로 돌아가신 것을 게재했는데, 이 한국왕실의 미남자 교육 참모 중좌의 죽음은 한국 사람도 잘 모르고 있어 흥미 깊게 읽었다는 사람도 있다.
독자의 반응이 있으면 기쁘다. 원폭과 한국왕실의 왕족과 연결된 것은 적고 실은 나는 이 사실을 히라오카 선생님 저서인 「희망의 히로시마」라는 책에서 알게 된 것이다.
8월6일、이우 중좌가 히로시마의 사령부까지 가는 길을 지도로 표시하여, 이우 중좌가 피폭을 당하여 쓰러져있었다고 하는 장소를 두 곳 중 어는 곳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또 유체는 군용기로 운반되어 부인과 대면했을 운연궁도 보았다.
조금 사실적으로 썼는데, 이 점이 히라오카 선생님의 글과 다른 점인 것 같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무궁화 3호를 읽고 2호도 읽고 싶다고 하여 2호를 보내 드린 적이 있다. 이때부터 선생님과 연락이 시작되었고, 2년 전에 합천, 대구에서 피폭자와 만났을 때, 그 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15~16매 보내 주셨다.
그리고 “이제 나이도 있고 하여 한국에 가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됩니다”라는 첨서도 들어 있었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중학교를 서울에서 지내고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의 중국신문사에 들어가 1965년에 한일조약이 체결되는 그해 가을에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과 부산에서 9명의 피폭자를 찾아내었다고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한국원폭자에 대한 초창자라고 생각한다.
4년 전에 한국원폭전시관을 개관할 때, 아무리 훌륭한 전시관을 개관한다 해도 매스콤 등에 의해 사회로, 세계로 널리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쓰지는 않았는데, 히라오카 선생님은 그 점을 잘 알고 13명의 보도진을 데리고 온 것이다.
원폭전시관을 개관한 이래 보도진이 일시에 13명이 온 것은 처음이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1991년에 히로시마 시장이 되어 2기를 근무하셨다 하는데, 이미 20년 전에 퇴직하시지 않았을까? 한국까지 일본의 보도진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의 영향력、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연에 의하여 앞으로 전시관 주최의 추도식이나 페스티벌에 보도기관에서 와 주실 것 같다.
그한국 방문을 마친 후 캄보디아에 다녀와서 감기몸살로 10일 정도 입원하였다 퇴원하셨다는 메일이 왔다. 「한국원폭전시관、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글이 담겨 있었다. 정말 기뻤다. 4년 동안의 노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90세를 넘겼지만, 아직 정신은 건재하다는 생각이 되어 내년 페스티벌에도 오실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히라오카 선생님은 1965년부터 적어도 1990년대 후반까지 30여 년 동안 긴 시간 한국피폭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피폭자의 역사를 보면 1970년대부터 압도적으로 일본 사람이 한국피폭자에 대하여 관여가 시작되고 있다. 일본 사람이 한국피폭자를 걱정하여 펜을 잡았다. 역시 한국원폭에 관한 사항의 초창자、개척자, 공로자라는 명성을 드려도 좋지 않을까?
피폭이 알려진 70년대, 80년대의 기록을 보면 예를 들면
「한국피폭의 존재를 제외하고 세계평화건설의 기초적인 작업은 있을 수 없다. 모든 핵에 관련된 문제, 평화운동은 현대의 사막에 버려진 한국피폭자를 기점으로 하여 재출발합시다.」
이와 같은 불을 품는 듯한 말이 제일 번성한 때가 있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이와 같은 불을 품는 말을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고, 물론 실행도 하지 않고, 시대의 변천기에 있다.
히라오카 선생님이 남기신 70년, 80년대의 말이 변해 가려는 시대에 우리들은 그 말을 어떻게 파악해 나갈까?

남은 사람, 아는 사람, 본 사람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과거에 고생하신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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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오카 선생님과 언론과의 전시관 인터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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