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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11호) 신기한 길상

관리자 2019-10-11 (금) 18:57 2년전 1358  

 

 5월 13일 아침 10시, 타케시 씨와 호텔 로비에서 만나 타케시 씨 댁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네, 내년 일로 왔습니다.”
“무슨 큰 일이라도 있습니까?”
“제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노력해 보고 싶어서...”
“하~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저와 관련이 없는 예능인 관계여서 이것이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만...”
“예능계입니까? 어떤 일입니까?”
“원폭피폭자는 올해가 74주년, 내년이 75주년이 됩니다. 한국의 피폭자 평균연령은 85세가 됩니다. 피폭 70주년 때 피폭자의 평균연령이 80세이고 저는 30년 동안 피폭자에게 봉사활동을 해 왔기에 피폭자를 위하여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를 건립하겠다고 피폭자 회의 석상에서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45년 전에 이미 재일한국인이 히로시마에 위령비를 건립했는데 본가인 한국에는 위령비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청에도 부탁하여 건립부지를 물색했지만 결국 여의치 못하여 2015년 8월 6일, 피폭 70주년에 맞추기 위하여 나의 건물을 20평 정도 개조하여 한국원폭전시관을 만들어 그 안에 위령비를 건립했습니다.
내년은 75주년이 되고 피폭자의 평균연령이 85세로 됩니다.
작년의 추도식은 도봉구 구민회관의 홀을 빌려 태양회가 제작한 원폭투하장면의 동영상을 보여드렸는데 많은 피폭자분들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보고 있었지요.
한국 피폭자는 원폭투하 직후의 영상을 보는 것은 아마 처음일지도 모릅니다. 70여년 전, 자신들이 피폭을 당하고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 당시의 비참한 광경을 지금 보니 말할 수 없는 공포와 감동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타케시 씨, 피폭 80년, 5년이 지나면 90세로 되는데 과연 몇 분이 추도식에 오실 수 있을까요? 내년 75주년에 휠체어로 오실 분이 70~80% 계실지 모르겠지요. 저는 인생의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예능인을 한국에 부르고 싶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매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추도식을 보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히로시마에는 세계 다수의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분이 오시고, 일본은 총리대신이 참석하여 히로시마 시장과 함께 핵무기 폐기를 세계를 향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폭자의 마음속에 우리들은 원폭증으로 죽어가지만 이런 전쟁을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우리들과 같은 불행한 사람을 다시는 만들지 말라고 하는 피폭자의 대변인이지요. 노령으로 말을 잘못하는 분들의 대변이 되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이 넘치는 합창이 있고 프로 가수들의 감정 어린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두세 번 들었는데,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씨의 원폭의 시 낭독이 있지요.”
“다카하시 씨, 잠깐만요. 그런 일본 가수를 한국에 초청하여 한국인피폭자、이제 인생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노령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꿈과 같은 이야기로 저같이 사회적인 힘이 없는 사람은 불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이루어진다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뇨, 내 친구가 어릴 때 소년탐정단의 TV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지금도 예능계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 불러볼까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케시 씨가 자동차를 길가에 세우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아 그래~~, 유감이네. 또 전화할게. 고마워” 전화를 끊고 나에게
“오늘은 일이 있어서 오지 못한답니다. 다음 기회에 만나자고 했으니 다카하시 씨의 소원 또는 꿈을 나에게 들려주세요. 나의 절친이니까 말해 두겠습니다.”
그런 후 약 3분정도 지나자 타케시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 그래~~ 알겠다. 그럼 0000에서 기다릴게”
“아~~ 다카하시 씨가 한국에서 오셨다니까 시간을 내어 온다고 합니다요” 하며 안내해 준 곳은 호텔의 조용한 티룸이다.
“여기는 우리들이 모이는 장소이지요.”
3분이 지나자 선량해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일본문명연구소 섭외담당 가토 히로시(加藤弘)」 씨의 명함을 받았다. 40~50년 전일까? 주역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 요시나가 사유리 씨의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젊은 사람들은 잘모르지만 옛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이 정도 알면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내년 한국에서 피폭자 75주년을 위한 『반전평화의 페스티벌』을 왜 개최하는가를 설명하자면 10분 20분으로 되지 않을 것이고, 바쁜 사람을 장시간 이야기 한다 해도 한국의 피폭자를 위하여 와 주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가토 씨, 바쁘신 중에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내년 11월에의 행사를 위해여 사단법인 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또 한국원폭평화전시관 관장으로서 부탁합니다. 한국피폭자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아니 75년 동안 괴롭고 쓰라리고 고독함을 견디며,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한평생을 살아온 한국인 피폭자의 한을 풀어 주십시오. 이를 위하여 오시라 해도 스케줄이 꽉 짜여 있을 것이고, 힘들게 한국 가는 것도 어렵지만 그래도 죄송합니다만 가토 씨에게 제가 설명을 해도 좋겠습니까?”
가토 씨는 기꺼이 승낙해 주셨다.
“잘 아시는바와 같이 한일합병은 1910년 8월 22일입니다. 일본대표 조선통감、테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조선내각총리대신、이완용이 대한제국 2대 순종황제의 목전에서 8개조항의 한일합병에 관한 조약문이 교환되었습니다.
제1조 「대한국황제폐하는 한국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영구히 일본국황제폐하에 양여한다」
한반도는 당시 삼천리 2천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동양에서도 결코 작지 않은 독립국가가 삼천리나 되는 넓은 대지를 완전히 영구히 일본황제에게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천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온 삼천리 대지가 내일부터 없어진다, 선조에게 무슨 말로 용서를 빌 수 있을까요?

폭력적 양도입니다. 양도하라고 했을 때는 이미 손발이 묶여서 거절하면 목숨까지 빼앗기는 상태로 조인에 응해야만 했습니다. 그 조인 자리에 아카이시(明石) 헌병 사령관도 하세가와(長谷川) 군사령관도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대한제국은 이 지상에서 사라진 국치의 날이다, 조선민족이 지켜온 이 대지는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땅을 치며 피를 흘리며 대성통곡이 삼천리 강산을 뒤덮었다 합니다.
일본 사람은 주인 행세를 하고 한반도에 이주했습니다. 일본 사람 일가가 한반도에 자리를 차지하면 조선인 세 집은 토지가 없어지고 유랑생활을 해야 했답니다.
합병이 되고 10년째,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은 3만 명 정도였습니다. 20년이 지나고 전쟁이 일어날 무렵에는 100만 명이 넘었고, 전쟁이 시작된 이듬해는 160만 명, 전쟁이 끝난 해는 230만 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다 합니다.
전쟁이 격렬해지면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되어 조선인 강제연행에 의하여 끌려온 사람은 70만 명이라 하고, 그 중에서 불행히도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조선인 8만 명, 나가사키에 3만 명(실제 숫자는 명확하지 않음), 이 중에서 원폭으로 즉사한 사람은 약 5만 명, 한국에 귀국한 피폭자가 4만3천 명, 일본에 남은 사람이 70만 명이라고 발표되었습니다.
피폭자를 포함하여 조국에 귀국한 사람은 전쟁이 끝난 해에 70~80%가 귀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피폭자는 일본피폭자와 비교하면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먼저 일본도 원폭증이라고 자각할 때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이 혼란스러울 때 한국으로 돌아간 피폭자는 원폭증에 대한 한국의 신문 기사도 없고, 원폭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알게 된 것은 20, 30년 후였습니다.
원폭증은 심한 사람부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세계에서 제일 궁핍한 국가라고 불렸으니 원폭증이 나타나서 피가 나오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아무런 약도 원인도 모르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다 겨우 피폭자협회가 생기지만 국가나 사회는
「당신들은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갔지요. 그곳에서 원폭을 맞았으니 자기 뜻대로 일본에 간 것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하자면 일본에 간 사람이 조금이라도 일본과 사이좋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친일파」라 비판 당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원폭이 투하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항복했고 한국은 독립했습니다. 원폭투하는 한국의 독립을 빠르게 한 것이다. 한국 독립의 기쁨에 비하면 원폭투하의 희생으로 된 것은 작은 일이니 조용히 있으라고 하지요.”
“잘 알겠습니다. 다카하시 씨가 말한 예능계와 어떤 관계가 됩니까?”
“미안합니다. 한국 피폭에 대한 말이 길었네요. 하지만 피폭자의 실태를 알지 못하면 저도 예능계에 대한 말을 할 수 없어서요”
“…저는 연이 있어 한국피폭자에게 30년에 걸쳐 봉사를 해 왔습니다. 매년 8월 6일의 추도식과 1년에 한 번 즐거운 야유회입니다. 당시 우리 봉사단체 이외는 아무도 도와주는 단체는 없었고, 비록 우리들은 작은 단체이지만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일본 사람이니까 8월 6일의 히로시마 추도식을 다음날 기사와 뉴스로 그 장면을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한국에서도 정부의 요인들과 많은 학술자、가수、합창단 등을 초청하여 피폭자들이 불행히도 피폭을 당했지만 국가나 사회에서 우리 피폭자를 격려해 주고  희망과 위로를 한 번이라도 좋으니 느낄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습니다.
딱 한 번 한국의 국회의원이 추도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비판뿐이고 피폭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는 한국에 위령각、위령비、평화탑을 건립했지만, 20년 전에 위령비를 세우려고 원폭협회 회장과 같이 토지를 찾아보았지만 적당한 곳이 없어 1년이 지나고 2년에 접어들 때 회장이 말했지요.
『다카하시 씨, 위령비를 세워 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피폭자는 위령비보다 현실적으로 먹는 것을 원할지도 모르지요.』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피폭추도식에 식사 대접에 배려를 했습니다.
내년 11월, 반전평화의 페스티벌에 한일의원연맹회장인 가쿠가 선생님에게 만날 기회가 있어 후에 내년의 계획서를 발송했습니다.
가쿠가 선생님은 바쁘시니까 다른 국회의원이라도 좋으니 따뜻하게 격려


해 주시면 좋겠지요.
일본 사람은 배려 깊은 환대를 잘 하지요. 일본에서 국회의원、예능인、학술자、평론가가 와 주실지 모르지만 오신다면 어려운 핵무기 이야기보다 상냥한 마음으로 힘이 생길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아간 후 ‘일본 사람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라는 마음이 생길 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고 제가 수십년 동안 생각해온 한일우호의 고리가 하나, 둘 연결된다고 생각됩니다.”
“알겠습니다. 다카하시 씨가 부르고 싶은 일본 사람의 예능인은 누구입니까? 나도 조금 예능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니까 그런 뜻깊은 행사에 협력할 수 있는 것은 협력하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진도이야기』의 텐도 요시미 씨입니다. 텐도 요시미 씨가 와 주신다면 텐도 씨의 노래인 ‘진도 이야기’, 이 진도는 한국의 15대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전라남도 목포 근처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 이름입니다. 이 진도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모도리(茅島里) 섬까지 4월, 5월경에 갑자기 폭이 40m 정도의 바다가 갈라져 길이 생깁니다. 1시간 정도이지만 그때를 기다리고 있던 수천 명이 진도체서 모도리까지 걸어갑니다.
그것을 작사가는 보고 ‘바다가 갈라진다 즉 지금까지 하나의 바다가 40m 정도의 길이 생겨 바다가 두 개로 된다.’
이 두 개의 바다를 작사가는 같은 민족인데 서로 떨어져 있는 한국과 북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북한에 있는 친족과 상봉하는 장면이 TV를 통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만나면 서로 부둥켜안고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海が割れるのヨ 道が出来るのヨ 島と島とが つながるのよ      
 (바다가 갈라져 길이 생겨요 /    섬과 섬이 연결되지요)     
 こちら珍島から あちら茅島里まで   海の神様 カムサハムニダ”  
 (이곳 진도에서 저곳 모도리까지 /   바다의 신이여 감사합니다)
 靈登祭の。。。。      
 (영등사리의....)


  이 노래 중 4곳에 한국말이 나옵니다. ‘진도’‘모도리’‘감사합니다’‘영등사리’
작사가인 나카야마 다이자부로 (中山大三郎) 씨는 갈라진 길이 북한까지 연결되어 남북이 하나로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다가 갈라져서 생긴 길이 일본까지 계속된다면, 하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 노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저 볼륨 높은 텐도 씨가 힘껏 부르면 어쩌면 일본까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요.”
“또 다른 노래와 가수가 있겠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조용필이 한국말과 일본말로 불렀지요. 이것도 불가능하겠지만...
일본의 『황성의 달』과 동격이 『보리밭』입니다. 이 두 개의 노래를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부르든가, 일본 사람들이 『이별』이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10여년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활동도 한 작곡가 길옥윤입니다. 또 서울 88올림픽 노래로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를 일본 가수도 일본어로 부르고 있었지요. 좋은 노래입니다.
제가 『원폭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발라드』라는 이름으로 작사하한 노래가 있습니다. 작사는 그래도 작곡은 명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 노래는 8월 6일 추도식에는 매번 태양회 합창단이 불렀습니다만 눈물을 흘리며 듣고 계시고 좋은 노래라고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만, 10년 넘게 들으니 『가끔 명랑한 노래도 불러주십시오』하는 사람도 있어서 페스티벌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히로시마의 8월 6일에 원폭의 시를 낭독하고 있는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씨이지요. 한국에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수십 번 생각했습니다.
저는 30여 년 동안 한국 피폭자 추도식을 보아 왔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나 쓸쓸합니다.
5년 전, 피폭 70주년을 기하여 한국원폭전시관을 개관하고,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소의 3배의 예산으로 추도식을 개최했습니다. 일본 대사관에서도 참석하고, 제가 우연히 스리랑카의 어린이들에게 문구를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스리랑카 대사관에서도 참석해 주셨고, 민요 가수, 무용, 피폭자의 핵무기 폐기선언을 70주년 만에 처음으로 했습니다. 작년 73주년에는 반전 평화의 주장도 하고 시를 낭독하고 가수가 와서 위로공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것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요시나가 씨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토게 산기치의 『아버지를 돌려다오, 어머니를 돌려다오』의 시를 낭독했지요. 그것을 전신으로 받치는 듯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씨의 피아노 반주가 절묘하게 매치 되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10일간, 민단과 피단협의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말을 했지만 정확하게 여기에 기록은 못하겠지만, 가토 씨는 한국피폭자의 말은 처음이기에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생각된다.
가토 씨의 잊을 수 없는 말은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이다.
타케시 님, 가토 님, 특히 가토 님은 처음에는 「오늘은 일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하셨지만, 다망한 중에 약 2시간 30분 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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