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속의 구조 활동
원폭에 의한 피해는 순식간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관공서, 병원 등 모든 기관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 통시이나 교통기관도 마비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피폭 직후부터구호활동이 시작되어 부상자의 응급 처치, 구호소로 이송, 시체 처리, 식량의 배급 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재 증명서를 쓰는 경찰관(히로시마 폭심지에서 2.500m)
자신도 부상했으면서도 이재민에게 이재 증명서를 발행했습니다.
이것으로 이재민의 구호식량(건빵 등)의 배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45(쇼와 20)년 8월 6일 쵤영/미쓰시게 요시토 씨 제공/주고쿠 신문사
특설 구호 병원이 된 신코젠 초등학교(나가사키 폭심지에서 3.000m)
나가사키 시내에서 가장 큰 구호소로 되어 많은 환자가 수용되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원폭 특유의 증상으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1945(쇼와 20)년 9월 25일 촬영/도미시게 야스오 씨 제공/아사히 신문사
신코겐 초등학교 구호소 내에서의 치료(나가사키 폭심지에서 3,000m)
촬영/마쓰모토 에이치 씨 제공/아사히 신문사
미치노오역 앞 임시 구호소에서의 의료 활동(나가사키 폭심지에서 3,600m)
1945(쇼와 20)년 8월 10일 촬영/야마하타 요스케 씨 제공/야마하타 쇼고 씨
구조 트럭에 실린 소녀(히로시마 폭심지에서 920m)
1945(쇼와 20)년 8월 9~12일 촬영/이야타케 하지메 씨 제공/아사히 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