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대만 이등휘(李登輝) 총통이 “대만인으로 태어나 대만에 아무 일도 못한 비애가 있었다.” 이 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 뒤에 각자가 다른 비애를 가지고 있다. 일본도 피폭자에 대해 처음부터 이해하고 도와주지는 못했다. 이 생지옥과 같은 공포를 널리 세계에 알려주지 못했다. 패전한 일본은 미국 지배 하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원폭의 공포를 세계에 알리지 못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을 떠난 후의 일본정부가 원폭피폭자에 대한 대처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천황 이하 많은 사람이 원폭병원을 찾아 위로하고 병원시설과 지원, 봉사를 피폭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피폭자들은 어땠을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너무나도 차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피폭희생자를 위한 ‘한국인 피폭위생자의 위령비’를 세워 슬픈 역사를 잊지 않고 돌아가신 피폭자와 또 살아계시는 피폭자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그동안 한국피폭자를 40~50년 동안 생각해준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도움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피폭자들을 한국정부에서는 진정 얼마나 많은 사람을 찾아서 위로의 말과 또 고통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줬을까?
지난 10여년부터는 피폭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만 매년 8월 6일 중앙본부에서 거행하는 한국인원폭피해자 추도식에 참석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총리 이하 국회의장, 미국대사까지 모두 참석하는데 비해 한국의 추도식은 너무 초라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이러한 피폭자의 비애를 알려주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지만 저의 능력과 표현력 부족으로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점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 피폭 70주년 피폭자 평균연령 80.3세, 피폭자들은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또한 많은 시간을 피폭자와 살아온 사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돌아가신 피폭자 분들에게도 저의 이 마음이 간절히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2015년1월30일
고교목남(高橋睦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