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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戰)평화의 꽃 문주란」한국에 또 분근(分根)-(2009.9.17.)

관리자 2018-03-05 (월) 04:32 6년전 5282  

 니시무라이치로(西村一郞)씨,

「반전(反戰)평화의 꽃 문주란」한국에 또 분근(分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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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복지회관에서 문주란 식수

지난 2003년에 이어 이번에도 2009년 9월17-18일에 평화(平和)의 꽃 문주란 일본 보존협회의 니시무라 이치로씨가 합천의 원폭 복지회관과 야로초등학교, 곤명초등학교, 곤명중학교에 문주란 7그루를 기증했다. 그에 대한 계획과 안내역을 태양회가 담당하였다.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번에는 부산시 해운대구에 기증하기로 하고 일정과 장소,  일본의 인원수를 파악하여 태양회가 주최하였던 「한일 차 문화 교류」 나 「한일 가라오케 경연」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 일본에 타진 중이었다.


그러나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부산 방면의 폭우로 인하여 산사태가 일어나 그 복구 작업에 분주하여 문주란 증정식은 다음으로 연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필가인 니시무라씨가 책을 출판 할 죠코요네타로(上甲米太郞)교장선생님과 관련된 학교에만 기증하기로 하고 그에 대한 모든 기획과 준비를 태양회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마침 다카하시 코우쥰(高橋公純)이사장은 작년에 일본 도쿄(東京) 신쥬쿠(新宿)의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을 견학하였을 때 그곳에서 죠코 교장 선생님에 대한 기념 강연을 들어 조금 알고 있었다.


죠코 교장 선생님은 1930년대, 그 당시 조선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역임하신 분으로 너무나 가난한 조선의 아이들의 실태를 보고 조선의 아이들의 편에 서서 일본 학생과 조선 사람의 학생과의 격차를 없애는 방향으로 교육을 했기 때문에 위험인물로 본 일본 관헌(官憲)이 죠코 교장선생님을 붙잡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넣었다. 그 형무소에서 약 2년 동안 형을 살고 학교를 쫓겨난 선생님은 구형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 그 당시의 조선인을 도우면서 일생을 마치신 분이다.

이 교장선생님은 태양회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장 오래 동안 지원해 오고 있는 한국 원폭 피해자협회 합천지부가 있는 합천의 야로초등학교와 또 그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함안초등학교, 그리고 사천의 곤명초등학교에서 교직을 맡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곤명초등학교와 곤명중학교는 이사장님이, 그리고 야로초등학교와 함안초등학교는 태양회의 김장수 회장과 다카하시 기획실장이 방문하여 미리 일정을 정해 놓았다.


니시무라씨의 환영회 및 숙박 호텔은 김장수 회장이 담당하고 기념품은 이사장, 또 문주란의 경위를 쓴 안내판은 서울본부가 담당했다. 이번의 안내판은 지난번보다 두 배의 크기로 하여 문주란의 사진까지 넣었다. 모든 준비는 완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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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복지회관의 문주란 식수를 마치고

9월 16일
원폭 복지회관의 문주란 식수를 마치고
오후 4시, 이사장 부부, 기획실장, 부산지부장과 회원이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 4시 40분에 비행기가 도착하여 니시무라씨는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니시무라씨에게 태양회를 대표하여 박정아씨가 꽃다발을 증정하였다. 숙소는 해운대 센텀 호텔, 그날 7시부터 니시무라씨의 환영회를 그곳에서 열었다.

이사장의 환영사에 의하면 “이것으로 지난 2003년에 이어 세 번째의 증정인데, 그 때는 니시무라 이치로씨가 한국 원폭 피해자 중앙회를 중심으로 원폭피해자 지부, 그리고 태평양 전쟁 유족회, 나자레원, 나눔의 집, 봉사단체 태양회의 각 지부에 기증하였고 한국에는 11그루, 대만은 7그루 증정, 이번에 한국에 7그루 증정하여 모두 25그루의 평화의 꽃이 니시무라씨의 손에 의하여 한국, 대만에 심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훌륭한 일이다.”라는 이사장의 환영사가 끝나고 기념품을 이사장께서 전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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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식수를 마치고 황금편백 앞에서 기념촬영​

 

9월 17일
이 날은 쾌청한 날씨로 김장수 태양회 회장의 자동차와 추복엽 부산지부장의 자동차 두 대가 움직였다. 문주란 네 그루와 이사장 저(著)의 「한일의 유광(流光)」책을 싣고 달렸다. 이사장이 저술한「한일의유광」은 한국 민간 여성 최초  비행사인 박경원(朴敬元)에 대한 것과 그 외 일본 사람이 본 명성황후, 유관순, 안중근 의사 등이 수록되어 있는 책으로서 단, 이 책은 전교생에게 한권씩 기증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기증한 책은 원폭복지관 10권, 야로초등학교 125권, 함안초등학교 70권, 곤명초、중학교 각 50권, 모두 305권이다.


2009년 9월 17일 11시, 합천에 소재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복지회관에 평화의 꽃 문주란을 일본의 문주란 보존협회의 니시무라 이치로(西村一郞)씨가 분근(分根)하여 복지회관의 우경미 관장님을 중심으로 합천군의 관계 과장님과 담당자, 피해자 협회 합천지부장, 복지관 사무장, 태양회 이사장, 회장과 함께 새로 증축한 복지회관의 제일 양지바른 곳에 「반전 평화의 꽃 문주란」을 두 그루 식수하였다.
나머지 한 그루는 화분에 심어 실내에 두기로 했다.  


이곳은 태양회의 김장수 회장과 다카하시 기획실장이 선발대로서 빨리 도착하여  이미 두 곳의 식수 장소를 준비해 둔 것을 확인하여 태양회가 도착하자 재빨리 관계자에게 흰 장갑이 나누어져 순조롭게 식수(植樹)를 하게 되었다. 한 그루만 살아남아도 문주란은 생명력이 대단히 강한 식물이니까 5년 지나면 그 아들 손자까지 순식간에 문주란의 가족이 불어나게 된다. 실은 평화의 꽃, 피폭(被爆) 문주란의 식물명은 「인도 문주란」이다. 인도는 대단히 더운 나라이며, 피폭 문주란은 원폭이 발산한 3천도의 고온에는 견디지만 심한 추위에는 뿌리가 얼어 죽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추운 산간지방에는 겨울이 되면 잎이 시들어진 문주란 위에 짚이나 가마니, 혹은 모포 같은 것을 덮어주는 것이 좋다. 식수를 마치고 복지회관의 2층의 넓은 홀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벌써부터 4,50명의 피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양회 이사장은「오늘 평화의 꽃을 니시무라씨가 일본에서 가지고 와서 우리들이 안내했습니다. 선물이라기 보다 제가 쓴 『한일의 유광』이라는 책을 10권 가지고 왔습니다.(여기서 따뜻한 박수가 나왔다.)


매년 합천지부의 야유회에 참가하지만 8월 6일의 원폭피해자 위령 추도식에는 서울의 원폭피해자 중앙본부의 추도식에 참가하기 때문에 합천에는 몇 번밖에 참가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또 조만간에 이 부근에 평화 공원이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태양회도 여기에 있는 평화의 탑보다 더 큰 탑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응원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건강하게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니시무라씨가 반전 평화의 꽃 문주란이 오기까지의 경위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1945년 8월 6일 일본땅 히로시마에 세계에서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에서 2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히지산(比治山)이 있고 그 부근에 6180부대의 본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대에 오지마 료헤이(尾島良平)라는 병사가 문주란을 병사 뜰에 심어두었습니다. 원폭이 떨어졌을 때  오지마 병사도 원폭의 폭풍에 휩쓸려 날라 가서 몸을 다쳤습니다. 오지마씨는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병을 치유한 후 그 부대에 가 보았더니 모든 동식물은 죽었지만 이 문주란만 원자폭탄을 이겨내고 살아있었습니다.

오지마씨는 그 문주란을 자기 집 정원에 심어놓고 반전(反戰)의 꽃으로 키워오다가 어느새 평화의 꽃으로 변했습니다. 오지마씨는 1979년에 돌아가셨지만 평화의 꽃으로 하여 문주란을 남겨 주셨습니다. 수천도의 뜨거운 원폭에서 살아난 생명력이 강한 문주란을 한국의 여러분에게 용기와 희망을 드리기 위하여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이 문주란, 평화의 꽃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주면 다행이겠습니다.』
그 후 우리들은 우관장님과 관장실에서 40분 정도 담소를 나눈 뒤 원폭 복지회관을 뒤로 하고 중식을 마친 뒤 합천의 야로면에 위치하고 있는 야로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먼저 죠코요네타로 교장선생님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였다. 이 취재에 관한 것은 태양회는 무관한 것이므로 옆에서 듣기만 했고 통역은 이사장 부인이 맡았다. 송득희 교장선생님은 아주 오래된 자료를 미리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계셨지만 학교의 옛날 역사를 더듬어 가는 듯 오래된 두꺼운 책을 더 찾아 주시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다. 약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죠코 교장선생님에 대한 취재가 끝나고 학교 현관의 좌측에 교장선생님과 이시무라씨, 태양회 이사장과 회장이 문주란 식수를 하였다.

식수 기념사진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야로 초등학교는 조용한 시골에서  유치원을 같이 경영하고 있는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학교로서 외국인 영어 선생님과 자상하신 교장 선생님이 인상적이었다. 이 학교에 「한일의 유광」책을 기증했다.

9월 18일
8시 30분, 김장수 회장의 자동차로 함안으로 향하였다. 니시무라씨, 이사장, 회장, 기획실장과 통역으로 이사장 부인이 동행했다. 함안교는 김현국 교장선생님께서 우리들을 반겨 주셨다. 역시 죠코 교장 선생님에 관한 자료는 오래된 역사속의 인물이기 때문에 의외로 시간이 걸렸는데,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니시무라씨는 진지하게 취재에 열중하고 있었다.

취재가 끝날 무렵에 교장 선생님은 우리들을 2층으로 안내해 주셨다. 교장 선생님은 2층의 창문을 열고 “앞에 보이는 밭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옛날의 관사 자리였다”고 하시면서 죠코 교장선생님은 여기에 거주하신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씀 하셨다. 이어서 영어교실, 여기에도 외국인 선생이었고 유아원, 훌륭한 도자기 교실, 새로 신축한 현대식 체육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안에 훌륭한 민속박물관이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지금까지 초등학교에 이렇게 멋진 박물관을 설립해 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곳에는 옛날 사람들이 사용한 농기구와 일반 가정의 부엌, 글과 그림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함안 주변은 고조선의 마한, 변한, 진한의 마한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고, 가야문명, 가야연합국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장소였던 것 같다. 함안초등학교의 박물관에는 그 고대문명을 나타내는 것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이 학교에도 「한일의 유광」의 책을 기증하고 유서 깊은 함안초등학교 현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전송을 받으면서 사천시의 곤명초등학교로 향했다.


마침 태양회 경남본부 회원이몇 명 함안초등학교까지 와주어 곤명초등학교까지 안내해 주었다. 곤명 인터체인지에서 약 20분 달리자 곤명 초등학교가 보였다. 우리들은 급히 교내로 들어갔는데 약속 시간이 훨씬 넘은 우리들을 김용길 교장선생님은 따뜻한 미소로 반겨 주셨다. 이 학교에서도 죠코 교장 선생님에 관한 자료 수집에 니시무라씨는 열심이었다.


역시 옛날 역사 자료를 찾아내었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는 듯하다. 이 학교에서는 죠코요네타로 교장선생님은 2대를 역임하셨고 그 제자는 지금 아무도 찾을 수 없지만 2년 후에 곤명학교에서 배웠다는 80대 되신 이지구 할아버지 한 분을 교장 선생님이 소개해 주셨다. 그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에 면장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정정하시다. 그분은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 주시면서 아직도 살아 계시는 90살이 넘은 당시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게 해 주시는 등 너무나 친절하고 열성적으로 도와 주셔서 정말로 고마웠다.

실은 이 학교에서는 전교생 앞에서 문주란과 책의 증정식을 할 예정이었지만 우리들의 도착이 한 시간 늦어져서 죠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오후 4시 가까이 문주란을 심고 기념사진을 찍고 급히 곤명중학교로 향하였다. 곤명중학교에는 죠코 교장선생님의 자료는 전혀 없고 단지 죠코 교장선생님이 교장을 하고 계실 때 있었던 수목(樹木)인 「황금편백」이 교사(校舍)의 현관 입구 양쪽에 두 그루 남아있었다. 「우리학교 교목」이란 팻말이 역사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문주란은 두 그루 필요하다고 하셨다 한다. 니시무라씨는 교장 선생님과 태양회 회장과 함께 문주란을 다른 선생님의 도움으로 두 그루 심었다. 죠코 교장선생님도 보았을 황금편백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시원한 주스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왔다. 눈부신 태양 아래서 마신 한 잔의 주스가 우리들의 갈증을 식혀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하여 제 2회 한국 「평화의 꽃 문주란」의 증정 및 식수는 모두 끝났다.


이번에 한국의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더 큰 감명을 받았다. 세 곳의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놀라운 것은 어느 학교도 다 같이 학교 설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교정의 식물 조경에도 마음을 써 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선생님들과 같이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환경 조성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현저하게 눈에 뜨였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2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화분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저절로 밝아져 왔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꽃, 꽃, 꽃에 둘러싸인 이 학교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남에 틀림없을 것이다.


니시무라씨는 그 이튿날 19일, 20일에도 취재에 분주하였다. 부산의 박물관에서 그 당시의 풍경이나 생활상황, 배경 등을 많이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사장은 예정된 용무가 있어 니시무라씨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전날 밤에 마지막 회식을 하고 헤어졌다.


또 문주란 안내판의 내용을 여기에 기재해 두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마음을 가져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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