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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오카 고교, 내한(來韓)(2004.8.23)

관리자 2018-03-04 (일) 13:17 6년전 5859  

사쿠라가오카 고교, 내한(來韓)

글 다카하시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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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오카고교 학생들과 쿠마가야 선생님, 태양회 이사장님

지난 8월 23일, 일본에서 사쿠라가 오카고교 학생들이 쿠마가야 선생님을 선두로 4명이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온 목적은 내년여름, 한국에 원폭의 불을 분화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지금 현재 한국의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원폭 피해자협회,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협의회, 나눔의 집, 독립기념관, 망향의 동산 등을 돌아보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위안부들과 같이 「일본인들 사과하라!」라고 주먹을 하늘에 치켜들기도 했다 합니다.

2박 3일 동안 사쿠라가오카고교 학생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일이 즐거운 추억으로 지금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8월 23일 밤, 선생님과 학생들 3명이 태양회 본부를 찾아 왔습니다. 그 날을 위해, 태양회 이사장님과 부인부님들은 환영회 등의 준비와 계획을 면밀하게 짰습니다. 이사장님은 항상 준비를 빠르게 하시고, 상대방에게 대한 배려도 깊으시며, 기발한 발상력에는 언제나 감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착실하게 잘해 주시는 부인부님들, 정말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그날 밤, 나도 한복으로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에도 부인부님들께서는 요리준비와 노래 연습도 하시면서, 저에게 「그 분들이 오시면 뭐라고 하면 돼요?」「어서오십시요의 일본어 잊어 버렸다. 뭐라고 하더라? 다시」라고, 일본어로「어서 오십시오(이랏샤이마세)」를 몇 번이나 연습하고 계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드디어 사쿠라가오카고교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기에, 저희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순간 입으로 나온 말은 “이럇샤이마세”가 아니고 「안녕하세요」였습니다. 습관적으로 한국어가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나오셨는데 선생님을 처음 보았을 때 학생이라고 착각 할 정도로 젊게 보였지만, 그 뒤를 따라 나온 학생 3명을 보고 「아~, 이 아이들이 학생이구나」곧장 알아보았습니다.


그 날은 아구탕 요리를 중심으로 불고기, 잡채, 김치 등등, 식탁에 넘칠 정도로 많은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학생들의 소개부터 시작되어 이사장님이 작사하시고 신대철 문화부장님 작곡하신 「문주란」노래를 부인부합창단이 부른 뒤, 가라오케로 들어갔는데 청년부들도 사쿠라가오카고교 학생들도, 다 같이 노래를 불러 환영회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날 밤, 학생들은 「밖에 구경하고 싶은데 다녀오겠다」고 하므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진원일 청년부와 강미희 여자부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집 주위에는 특별히 볼 것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냥 주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선생님과 딱 무주치는 바람에 그곳에서 또 이야기 가락이 붙었습니다.


편의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 일본과 한국의 차이, 학교에서의 활동 등을 이야기하고, 이제 곧 학교에서 문화제가 있는데 그 때 이번 한국에서 체험한 것과 원폭이 떨어진 그 날을 재현 할까 생각하고 있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날부터 우리들은 사이가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다음 날(24일), 사쿠라가오카고교 학생들은 출발한 후에, 방을 정리하러 갔더니 그 방에 있는 흑판에 오늘 할 질문들이 가득히 쓰여 있었습니다.


전날 간 곳에서 이사장님만 질문을 했기에 학생들은 질문들이 너무 없었다고 선생님께 조금 꾸중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쩐지 흐뭇해서 혼자 웃었습니다. 질문 잘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마음껏 못 했다고 했습니다.


학생 중 1명은「이 녀석, 한마디도 안 했어」라고 불평을 들은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틀 날 밤에도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피곤할 텐데 밤 10시, 11시경 「동대문이랑 한강갈래?」라고 물어 보니「가고 싶어요!」라고 하여 선생님의 허가를 받고 가기로 되었습니다. 내일은 일본에 돌아가는 날, 이왕 한국에 왔으니까 피곤해도, 하루 밤샘을 하더라도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권한 막걸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을 가지고 좋은 기분으로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동대문 갈 때는 정기확 청년부가 운전해 주고 정은정 여자부와 학생 3명이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동대문에서, 일본에서 이미 유명해진 떡볶이, 그리고 오뎅 등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가위 바위 보로 진 사람이 먹는다’고하며, 학생들은 「아~! 매워」소리를 지르면서도 먹고, 또 일부러 매운 소스를 가득히 넣어「자, 먹어봐」라고 하면 「이걸 어떻게 먹어…」하면서도 열심히 먹고 있었습니다.


동대문의 밀레오레 등에 가서 쇼핑을 했는데 후에 들은 이야기는「위험하게 10만원 주고 살 뻔했다」고 작은 액세서리를 가리키며 설명했습니다. 그 후 밤 3시경 한강으로 놀러갔습니다.「이 강물에 빠지면 무섭겠다」라고 하면서 몇 시간 지났는지, 우리들은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놀았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벌서 새벽 6시쯤, 나는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앉는데 학생들의 피로도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자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학생 3명과 나는 옥상에 가서 이야기 했습니다.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에 학생 1명은 바닥에 앉은 채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오늘 밤에는 일본에 가지? 믿겨지지가 않아」「한국이 마음에 들었다. 좀 더 있고 싶어」라고 유감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침밥을 먹을 때 내가 차를 가지고 들어가니까 한 학생을 그 방에서 자고 있고 이상하게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으므로 왜냐고 물어 보니「자면 눈 안에 김치 넣는다고 말했거든요」라고 하므로 「그것은 아프겠다~」라고 웃었습니다.


놀란 것은 학생들이 처음 한 말이「한국에 가면 꼭 개고기를 먹고 돌아간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배가 「한국에 가면 개고기는 꼭 먹고 와라, 안 먹으면 한국에 간 의미가 없다」라고 명령했으므로 먹지 않으면 못 돌아간다고 하지만 본인들도 먹어 보고 싶은 사름이 강렬한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먹어 보니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으며, 개고기 보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깻잎이 싫었다고 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보신탕을 먹어본 적이 없고「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어머니까지「의외로 맛있었네. 다 같이 먹으니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나도 한번은 먹어보고 싶었지만「실제로 개고기를 보면 강아지 생각이 나서 먹을 수 없게 된다」는데 엄마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째, 선생님과 학생들을 배웅한 나는「마지막 날까지 한국을 많이 공부하고 무사히 일본에 들어가세요」라고 빌면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실은 학생들 중에서 견학을 하고 이야기 들으면서 자고 있던 학생도 있었다든가‥. 마지막 날, 출발하기 전에 선생님이 편지를 남겨주셨습니다. 그 속에는「자원 봉사를 초월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3일 동안 방 제공, 식사대접, 운전, 안내, 통역 등등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고, 그 이틀 후 쿠마가야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는데, 그 속에는 마지막 날에 공항에서 학생들이 눈물을 흘린 일「너무나 친해졌다... 이런 기분이 될 줄 몰랐다」다음날부터 이 여행의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힘이 넘치게 학교에 와있던 일.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들의 배려, 대접, 모두에 감사하는 마음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도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감정이었고「고등학교 1학년 때에 나도 이렇게 순수 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웠고 동생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단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내년, 원폭 불의 분화를 위하여 더욱 더 전진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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