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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8호) 추억의 한 페이지-안영천 씨 추억

관리자 2018-10-20 (토) 11:31 5년전 1873  

-안영천 씨의 추억-


高橋公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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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지부 사무소에서 우측 안영천 씨

내가 처음 한국인 원폭피폭자를 만난 것은 1989년 4월로, 장인 어르신의 묘소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당시 원폭협회 합천지부장   안영천 씨와 만난 것이 시작이다.

아내의 고향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이다. 묘소 참배를 마치고, 후일에 봉사단체 한국 태양회 초대 회장이 된 추병수 씨에게 “합천이 어디에 있습니까?”고 물어 보았다. 추병수 씨는 “합천은 내 고향입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한국인 원폭피폭자의 사무실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습니까? 작은 마을이니까 가보면 알 수 있겠지요. 안내 하겠습니다.”며 기쁜 마음으로 안내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간의 행, 불행이나 연이 있고 없는 것은 필연성이 있겠지만, 그 필연성은 우연의 축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당시 변호사의 필요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 좋을 테니 좋은 변호사를 소개하겠다며 나를 안내해 준 곳이 시이나(椎名)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그때 10분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이 사무실에서 발행하는 주간신문을 보았다. 그 신문에 「한국원폭마을을 방문하고」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후에 한국의 피폭자와 연이 되는 계기가 되는데, 나는 약간의 책을 구입하였다. 그 책 중에 「재한피폭자 문제를 생각하다」라는 책을 시이나 변호사도 같이 저술하고 있었다. 그 책에 의하면 1986년 8월 7일에, 일본 변호사 협회의 피폭자 위원으로서 5일 동안 한국에 온 체험과 법적인 문제 등을 서술하고 있어, 그때의 체험과 감상 등을 시이나 변호사가 신문에 게재하여 발행한 것을 내가 보게 된 것이었다.

장인 어르신의 묘소를 참배하기 2년 전에 시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잠깐이나마 들르지 않았다면 합천에 피폭자 사무실이 있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2년 동안 합천이라는 한국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은 시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본 주간 뉴스가 상당히 인상이 깊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2년 전의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깊은 감격에 쌓인다.


그날, 사무실에 합천지부장인 안영천 씨가 혼자 있었다. 나는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이 주변에 피폭자 중에서 제일 어려운 피폭자와 만나고 싶습니다만...”
“안내 하겠습니다.”


안 지부장은 오토바이를 탔다. 안내 받은 곳은 김성조 할머니 댁이었다. 할머니는 방에 누워 계셨다. 실은 나는 10년 전에 아직 일본이 흑백 TV 뿐이었을 때, 한국인의 생활상이 방영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한 평 정도 되는 방에 누워만 계시는 사람에게 가족이 음식을 가지고 오면 얼굴만 내밀고 겨우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또다시 이불속에 누워버리는 환자의 모습을 방영한 것을 보고 있었는데, 아마 그 환자는 원폭피폭자라는 것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피폭자가 그렇다면 그 현실을 확실하게 내 아이들의 뇌리에 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도 같이 외할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한 것이다. 안 지부장은 지금부터 가는 곳은 피폭증으로 9년 전부터 누워만 계시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10년 전에 내가 TV에서 본 중병 환자와 같은 집에 데리고 가는가 했다. 그러나 이 성조 할머니는 일본어로 말한다. 기운이 좋은 것을 보고 놀랐다. 갑자기 할머니께서  “일본 사람인가? 나는~~ 처음에 와카야마현에 갔는데~~, 그곳에서 히로시마에 갔지. 피카돈(원폭)에게 당하고 말았지. 그런데 담배 없는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 대신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과자를 드렸다. 그 과자를 소리를 내면서 잡수신다.
지금 이렇게 추억을 더듬어가면서 써 가면서 신기하게 느껴진 것은 그 때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누워 계셨다. 외부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성을 보기 힘들었는데 분명히 한복을 입고 계신 것이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려고 할 때 나는 물어 보았다.
“할머니,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까지 힘차게 말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그것은 저~~ 하루라도 빨리 아름다운 달이 뜨는 산에서 조용히 잠들고 싶은 일이다네...”
나는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빨리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힘차게 이야기하던 할머니의 마음속에서는 이 이상 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 원폭병은 아무리해도 낫지 않으니까 빨리 죽는 것이 편하다, 고 ‘소리 없는 소리 민중의 소리’를 나는 들었다.


“추 씨, 부탁이 있는데, 하나는 부드럽고 따뜻한 이불을 사주세요. 편한 잠옷도 5~6섯 벌을 사 주세요. 그리고 작은 책상을 사고 작은 라디오도 사고, 화병에 꽃을 꽂아 주세요. 이 방의 벽지를 산수화가 그려진 벽지로 갈아 주세요. 가능하면 둥근달이 그려져 있는 벽지가 좋겠습니다만(방이 어두컴컴하고 연기에 그을려져 있었다). 그런 벽지를 바르면 조금 더 밝아지겠지요.”

10만 엔을 추 씨에게 드렸다. “남은 돈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이라도 드시게 해주세요.” 라는 부탁을 하고 원폭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오자 안 지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카하시 씨, 실은 우리들 피폭자는 매년 한 번, 이 주변에서 야유회를 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제가 이 마을의 경찰서장이나 소방서장, 군청 등을 돌아다니면서 용돈을 조금씩 얻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모처럼 모여도 그다지 음식이 풍부하지 않아 힘듭니다. 조금이라도 협력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몇 명이나 모이십니까?”
 “300명 정도 입니다만”
 “알겠습니다.”
계산해보니 일본 돈으로 약 20만 엔이면 남겠다고 한다. 나는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본 사람이 보통 하는 인사말로 “그럼 안 지부장, 또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라고 했다. 사건이라고 할까 나로서는 대 사건이 이후에 일어났다.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안 지부장이 갑자기 굳은 표정의 얼굴로 “다카하시 씨, 조금 기다리세요!”
“왜 그러십니까?”
“이것을 보십시오!”
내 앞에 내어 놓은 것은 명함철이었다. 일본인 명함이 약 800장 정도가 명함철에 끼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일본 사람이 여기에 와서 돌아갈 때는 반드시 ‘또 오겠습니다’하고 돌아가지만 두 번 다시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도 똑 같이 거짓말을 하십니까?”


그 때, 나는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 만나서 30만 엔이나 선뜻 내어 놓은 사람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닌가?’라는 말을 들으니 매우 서운하였다.
“아~ 그래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한 번 약속하면 꼭 옵니다....”
나는 무언실행이 아니고 유언실행, 즉 한 번 말하면 반드시 한다. 할 수 없는 일은 말하지 않는데 꼭 온다고 말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700년 전통을 지닌 고찰 본응사 31대 주지, 위계는 권승도였다. 좀처럼 해외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나 안 지부장의 “당신도 거짓말을 하십니까?”라는 한 마디에 그만 약속을 하고 만 탓에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그로부터 매년 내가 한국에 갈 수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을 대리해서라도 1년에 두 번의 봉사활동을 실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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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일시적인 자유를 얻어 합천의 야유회에 300자루의 연필, 300봉의 차 등과 약간의 기부금을 가지고 한국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나를 시샘하는 그룹이 나를 모함한 탓에 나는 김해공항에서 되돌아가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 지부장은 피폭자 600명의 날인이 찍힌 탄원서를 제출하여 나의 무죄를 증명해 주었다. 나는 무죄였던 것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한국에 거주할 시기에 어느 입국관리국의 한 분이 말하기를 “다카하시 씨, 당신은 한국의 원폭피해자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고 있군요. 원폭피해자라는 특수한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라고 했다. 그 때 머리에 떠오른 것은 600명의 탄원서를 제출한 안 지부장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1998년 봉사단체 태양회 경남지부 사무실을 건립할 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반대하는 방해가 계속되어 공사가 중단되고 몸싸움까지 일어나는 등의 일이 발생하여 1년에 완성될 건물이 약 3년 걸려 겨우 완공 되어 낙경식을 하게 되었다. 낙경식을 하는 날까지도 반대하는 측의 시위가 있었다. 
낙경식이 시작되고 드디어 내빈 축사가 한국원폭 피해자협회 회장, 한국원폭복지관 관장 등이 끝나고 드디어 안 지부장 순번으로 되었다.


“봉사단체 태양회가 우리들 합천지부에 지원한 금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몇 월 며칠부터 시작하여 1998년 몇 월 며칠까지 지원한 금액 합계 1억 몇 천만 원입니다. 태양회 이사장 및 태양회 회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태양회 경남지부 건립을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고 단지 10년에 걸쳐 지원한 금액만 말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힘이 되었는지 식이 끝나고 축하연도 끝날 무렵 한 남자가 찾아와서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라고 한다. 반대 하던 마을 주민의 중심으로 지금까지 맹렬하게 반대하던 사람이었는데 낙경식을 뒤에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안 지부장은 우리들이 곤란한 일이 생기면 훌쩍 나타나 우리들을 도와주었다. 
  “다카하시 씨, 당신도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한 번 약속하면 꼭 옵니다....”

이 약속 때문에 원폭피폭자와 30년의 세월을 같이 해온 것이다.


또 안 지부장이 일본의 군마현의 나의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본 정부에 호소할 것이 있어 왔는데 1시간 정도 머물다가 돌아간다고 한다. 
“일본에 와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모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자를 사 드렸는데, 후에 알게 된 것은 안 지부장이 필요한 모자는 내가 사 드린 모자가 아니고 둥근 테가 달린 하트 모자였다고 한다. 다음에 사 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2001년에 합천에 갔을 때는 안 지부장은 입원하여 이미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만날 수가 없어 하트 모자는 영영 사 드리지 못하고 말았는데 이것이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또 오겠습니다”라고 한 말은 합천 사무실에 오는 것이 아니고, 성조 할머니가 아름다운 달빛이 비치는 산에서 조용히 잠들고 싶다고 하시기에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오겠다는 말이었다. “담배 있냐?”고 물었을 때 담배가 없어서 아이들 과자를 드렸지만, 다음에 올 때는 귀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많이 담배를 가지고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합천에 올 수 없었다. 겨우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어 합천에 갔을 때는 이미 할머니는 아름다운 달빛이 비치는 산속에 계셨다.
 “할머니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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