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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6호 2017년 5월] 미국 대통령은 한국피폭자에게 사죄를 해야 됩니까?

관리자 2018-01-20 (토) 09:40 6년전 1816  


미국 대통령은 한국피폭자에게
사죄를 해야 됩니까?

관장 고교목남(高橋公純)


 
지난 4월, 사천시에서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원폭피해자협회 경남지부장과 부지부장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지부장께서 “관장님은 넓은 시야로 원폭을 보고 계시는 것 같은데, 미국 대통령은 우리 한국인 피폭자에게 사죄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때는 시간상 간단하게 대답을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에는 사회복지와 봉사활동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해 왔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신념이나 고매한 이상은 없었다. 눈앞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적은 힘이나마 일부를 나누어주고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더한 기쁨이 없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였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전시관까지 개관하는 것까지 발전한 것뿐이다.


일단, 나의 결론은「물론 사죄해 준다면 좋겠지요. 미국 대통령이 사죄한다면 피폭자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으니까요. 피폭자들의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죄송합니다.” 라는 한 마디가 긴 인생의 고통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미국의 대통령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견해나 생각은 정치、과학、의학、인류학、불교사상、평화학、각종 사상에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먼저 역사상에서 당시의 세계정세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 『만약』 이라는 것이 있다면」이라는 책이 있다.

근세에서 최대의 살상력 병기인 원자폭탄에도 이 『만약』에 닮은 많은 문제가 있다.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한 것은 1938년이다. 이것이 원자폭탄의 제조로 연결되어진다. 당시 노벨상을 탄생시킨 알프레드 노벨이 폭발물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근세과학의 발달에서 본다면 언젠가는 원자폭탄을 만들 운명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에서 원자폭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1942년의 일이다. 이것을 「맨해튼 계획」이라고 한다.


맨해튼 계획의 중심인물은 오펜하이머라고 하는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로서, 힘이 되어준 사람은 유럽의 물리학자들이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살해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삼았다. 유대인의 물리학자、유대인의 아내를 둔 물리학자들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물리학자 레오 시라도가 아인슈타인에게 부탁하여, 아인슈타인의 서간이라는 형태로,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의 제조를 서두를 것을 진언하게 된다.


원자폭탄이 완성되면 어느 나라에 사용할까? 그것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에 투하할 예정이었겠지요. 하지만 독일은 일본이 전쟁에 패하기 전에 먼저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말았다.

여기에 두 번째의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다.
만약에 독일이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은 생겨났을까? 생겨나도 일본의 패전 1945년 8월까지는 원자폭탄의 제조는 완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원자폭탄은 어느 나라에 사용해도 절대 반대이지만, 독일의 항복이 3개월만 늦었다면,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는 않았지 않았을까하는 가정이 있다.


원자폭탄은 1945년 7월 16일에 완성되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라고 불리는 원자폭탄은 직경 70cm、길이 3m、무게4톤、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은 직경 1.5m、길이 3.5m、무게 4.5톤이라고 한다. 상당히 크고 무겁다. 이 원폭이 미국의 뉴멕시코 주에서 태평양의 테니안 섬으로 이송되어 왔다. 테니안 섬은 사이판, 괌에 가깝고 이곳은 B29 대형폭격기가 날아갈 수 있는 활주로가 이미 4곳이나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원자폭탄이 8월 6일과 9일 일본에 투하되었다. 원폭을 완성한지 불과 20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미국은 원폭투하를 서둘러야 했는가?
그것은 역시 얄타 회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크림 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가 모여 전후처리와 평화기구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미국은 소련에게 일본 참전을 부탁하여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소련은 일본과 「일.소 중립조약」을 조인하고 있어, 독일은 공격한다 해도 일본 참전은 어려웠다. 그것도 독일은 아직 항복도 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카이로선언에서는 일본이 무력이나 무리하게 손에 넣은 본섬 이외의 섬 등을 되돌려 주게 되어 있으므로、만주、대만、한반도、사할린、천조열도 등 소련은 이것을 얼마나 손에 넣고 싶었는지 모른다. 얄타 회담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이 스탈린에게 머리를 숙이며 일본에 참전할 것을 부탁했다 한다.


드디어 일본의 패전을 예측한 전쟁종결에 대하여、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에서、미국, 영국、소련의 수뇌가 모였다. 1945년 7월17일부터 8월 2일까지이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전보 2통이 루즈벨트에게 도착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큰 형님과 같은 목 쉰 소리를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수술은 완료, 진찰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만족할 것이다」

이 전보는 전날에 미국이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하고、세계에서 처음으로 2개 가졌다고 하는 암호였다. 이렇게 강력한 무기를 가진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대일참전을 부탁할 필요는 없어진다. 오히려 미국이 중심이 되어 전쟁에 이긴다면、종전 후 소련과 영유권 문제로 귀찮은 논쟁 등을 벌일 필요는 없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3번째의 『만약』이 붙는다.
그것은 원폭투하는 단순하게 일본에게 패전을 독촉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고 「소련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과 「소련에 대한 미국의 우월성、나쁘게 말하면 위협하기 위한 것」이다.

「소련님, 미국은 이렇게 끔찍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대등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원폭투하의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에는 「옥쇄전」이라는 것이 있다. 3천명의 병사가 있으면 3천명이 모두 죽을 때까지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싸우는 일이다.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郎)가 만든 「가미가제(神風) 특공대」, 이것은 폭탄을 실은 비행기에서 적군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고、폭탄과 함께 적군의 전함에 비행기를 부딪쳐 타격을 주고 자신은 죽는 방법이다.


전쟁이 악화되자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있었던 일본군들이 옥쇄전으로 사라져갔다. 그 유명한 유황도(이오 섬) 전투를 보도록 하자. 이오 섬의 면적은 겨우 22k㎡、제일 높은 산이 169m이다. 이곳에서 약2만 명의 일본군과 미군 6만 명이 전쟁을 치뤘다. 전투는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 26일까지 약 한 달 만에 끝났다.


일본 병력 2만9백33명 중 2만129명, 96%가 전사 혹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미군 해병대는 전사 6천821명、중경상 2만1천865명、미국 공격부대의 사상자가 일본보다 더 많았다고 하는 진귀한 역사를 만들었다.


아투 섬 같은 곳은 「살아서 포로의 수치를 당하지 말자」라고 생각한 비전투원, 일반인과 함께 돌진하여 죽었다 한다.

태평양의 작은 섬들이 완전히 미국군에게 점령되고、드디어 일본본토의 입구인 오키나와에 미국군은 상륙했다.


미군의 함선 1,457척, 미국 육해병 18만여 명, 반면 일본군은 약 10만여 명이 1945년 4월1일부터 6월23일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은 11만 명(민간인을 포함하여 15만 명)미국 측이 48,700명이 희생 되었다.
 

드디어 미국은 일본 본토 상륙작전이 시작 된다. 먼저 구주를 세 방면에서 공격하여 일어나는 피해를 생각해 보면 미군의 사상자는 26만6천 명이 나올 예상이다. 다음은 오키나와의 3배의 시코쿠(四国)、북해도、본토로 점점 전개되어 간다면, 50만 명이나 100만 명이 아니라 그 몇 배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측도 민간인을 포함하여 200만 명, 300만 명이 희생 될 것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미국도 일본도 사상자가 상당할 것이라고 미국 측은 예상한 것이다.


당시의 일본 정부는 군부의 발언권이 강력했다. 아나미 육군대신, 우메즈 참모총장, 도요타 군령부장 등 군 관계자는 ‘만주에 아직도 200만 명의 육군이 있다. 적군을 본토로 몰아넣어 통타를 가한 후에 화평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주장이 강하여 포츠담 선언을 무시하고 전쟁을 계속하자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렇게 되면 본토 결전의 구주의 공방만으로도 미·일군 합하여 100만 명 정도의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차라리 원폭을 투하하여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은 무궁화 3호에서도 조금 게재했지만, 일본군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끝낼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명장이나 지장은 나아갈 줄을 알고, 물러설 줄을 알고, 전쟁을 종결할 때를 알고 있다.


1945년이라는 패전의 해의 3월, 도쿄라는 일본의 수도가 공격당했을 때, 6월의 본토라고 할 오키나와가 공습을 다 받았을 때, 전쟁 종결의 때는 얼마든지 있었다.


미국은 친절하게도 상공에서 종이를 살포하고 ‘다음은 이마바리, 우라와、아키타를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도망가시오, 이런 무모한 전쟁은 빨리 끝내시오’ 라는 전단 458만 매의 종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공격했다.
왜 여기까지 당하고도 전쟁을 끝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 되었을 때, 당시 일본도 원폭을 개발하고 있었다. 일본은 그 연구 개발소도 공중폭발로 파괴되어 만들 수 없었지만, 그 연구실장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박사가 조사단으로 히로시마에 가서 「틀림없이 원폭입니다」라고 보고했다 한다.


이 대 참상이 다시 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즉각 전쟁은 끝냈으면 좋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9일 걸려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당하고, 패전 6일전에 소련의 참전의 빌미를 제공하여, 북방사도까지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소련이 참전 전에 전쟁을 종결하였다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동족간의 비극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크나큰 역사의 뒤틀림 속에 원폭은 투하되었다.
한국피폭자 분들은 이런 세계적인 역사의 크나큰 기복에 휩쓸리고 마는 일이 있지만、역시 미국 대통령에게「한국인피폭자에게 사죄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대통령에게 사죄하라고 했을 때 「원폭투하 시기엔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는데 누구에게 사죄해야 되는가?」 라고 반문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분명 원폭은 비전투원까지 죽인, 제일 잔혹하게 죽이는 것이기에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전쟁의 지도자 머리는 그릇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강력하고 참혹한 원폭을 맞고서야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반론할 것인가?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말하자면 불교신봉자 정도이다. 그 지식은 깊지도 않고 넓지도 않다. 강하게 대승보살도의 입장에서 말하면 원폭 투하를 한 나라의 책임자는 사죄할 마음을 가지고, 원폭의 피해를 받은 사람의 쓰라림과 고통을 참아온 그 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원폭으로 피폭을 당한 사람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할 때가 오고 있지 않을까.


(다음 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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