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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5호] 유품사진 전시회의 가능성

관리자 2018-01-19 (금) 08:40 6년전 1758  

유품사진 전시회의 가능성

관장 고교목남(高橋公純)


「펜은 검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전시관 소식지인 무궁화 소식지가 예상외로 조금씩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작년 11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나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회원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끔 우편물이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우편물을 보고 조금 놀랐다.  ‘무궁화를 읽어보고 감격했습니다. 전시관 회원이 되겠습니다. 지바 히데키(千葉秀樹)’라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지바 히데키 씨의 주소가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에 유묵을 주셨다고 하는 지바 토시치(千葉十七)의 고향과 가까운 타지리마치(田尻町)로 되어 있고, 저의 주소를 몰라 아마 안중근 기념관으로 우편물을 보낸 것 같다. 지바 히데키 씨는 나와 같은 고향에 살고 있다.


우리들의 고향 미야기현(宮城県)은 동북 6현 중의 한 현이다. 동북사람이라고 불리고, 그 동북인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지면에 넘치고 있었다. 또한 그로부터 반달정도 지나서 지바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무궁화를 읽고 감격한 학교 선생님이 있다. 그 선생님이 꼭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우 기쁜 소식이지만, 나는 일본에 1년에 2~3번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당장 일본으로 갈 수는 없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만나 뵙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마침 일본에 갈 용무가 생겨 지바 씨와 만날 약속을 했다.


12월 8일, 센다이(仙台)에서 지바 씨의 소개를 받은 사람은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었다. 지바 씨는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는데 처음 만났지만 친밀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리고 사진까지 4장을 받았다.
한 장은 히로시마의 원폭 돔이고, 다른 한 장은 사다코(貞子)가 접은 종이학, 다른 한 장은 원폭의 폭풍을 받아 새까맣게 탄 어린이용 세발자전거 사진이었다.


한국원폭 평화전시관에는 히로시마 원폭 자료관에서 받은 30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 사진도 처음 보는 사람은 충격을 받는 사진인데, 이 사진도 역시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어서 원폭의 피해가 처참하다는 것을 새삼 생생하게 느끼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힘이 넘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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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폭유품 세발자전거 (사진제공: 지바 히데키)

「사진이 대단하군요. 일본에 있는 원폭유품을 한국에 가져와서 한국에서 원폭유품 전시회를 갖고 싶은 희망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어서 우리들 같은 개인이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한 노력은 해보지만 이런 생생하고 힘이 있는 사진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바 씨는 말했다.

「무궁화를 읽고 원폭 피해자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한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진은 미야기 현에서 오사카까지 버스로, 오사카에서 히로시마까지 신간센을 타고 당일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또 버스로 오사카까지 가서 당일로 사진을 찍어 오겠습니다.」


오사카까지 버스로!? 센다이라면 오사카까지 700km정도 거리가 될 터인데 젊은 사람도 아니고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4번째의 사진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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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이 치바 토시츠(사진제공: 치바 히데키)


이 사진속의 9명중 8명은 화복차림이고 한 명만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쥐고 있다. 이 양복을 입은 사람이야말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약 140일 동안 뤼순 감옥에 있었을 때 안중근 의사를 감시하던 그 치바 토시치(千葉十七)이다. 사진 뒤편에는 「뤼순 메이지 41년 9월 촬영」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관동군 육군 상등병이었던 치바 토시치는 안중근 의사의 간수로서 복무할 때가 24세 때(1909년)이니까、이 사진은 지바 토시치가 23세 때의 모습이다.


머리는 빡빡 깎았고 나비 넥타이와 양복차림、도저히 23세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눈에 강렬한 빛을 발하는 다른 8명, 아마도 같은 헌병인 것 같다. 치바 씨가 헌병으로 복무한지 3년 째 되는 가을이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안중근의 유묵에서 배우다」라는 책을 출판하였기에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스즈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쿠리코마시 지방에서 위인은 치바 토시치(千葉十七)를 들 수 있고、학교에서도 치바 토시치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폭에 관한 이야기, 치바 토시치,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다.

12월 12일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연말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치바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22일 히로시마에 가서 사진을 촬영하고 온다고 한다. 내년 봄쯤 따뜻해지면 촬영하러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춥고 바쁜 시기에 간다는 것이다. 정말 성격이 급한가 보다. 그래도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 만약 금지되어 있다면 먼 거리를 힘들게 와서 허탕을 치게 된다. 나는 즉시 히로시마의 자료관에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메일로 문의를 했다.


다음날 「치바 님의 22일 내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답장을 받고 즉시 치바 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팩스를 넣었다. 그리고 22일 치바 씨가 소식을 전해왔다.
  “사진촬영은 모두 끝났으며 그 일람표를 보내겠습니다.”


치바 씨 솜씨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일본의 원폭유품 전시회를 한국에서 할 수 있다면 그 전시회의 한 부분에 그 사진을 전시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유품 전시회가 불가능하면 최소한 사진전시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은 이외로 맞을지도 모른다. 새장속의 새도 아름다운 소리로 울면 작은 새들이 모여든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역시 전체의 기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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