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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4호 2016년 9월] 오바마 대통령과 히로시마(1)

관리자 2018-01-18 (목) 11:04 6년전 1777  

오바마 대통령과 히로시마(1)

관장 高橋公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온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우인에게 물어 보았다.
  「대단한 일이지요!」
  「그렇지요. 대단한 일이지요.」
  우인의 말은 흥분한 듯 강렬함이 엿보인다. 나도 솔직하게 동조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폭을 사용한 나라의 대통령이 71년 만에 원폭을 떨어뜨린 나라에 오는 것이다. 그곳에서 미국 대통령이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가 세계사에 남게 될 것이다.


  원폭을 투하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고, 그때부터 12명의 대통령이 부임했다. 「론、야스」라고 마치 중학교 동창생처럼 서로 친하게 이름을 부르던 사이였던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수상, 나카소네 수상은 자신의 별장에 레이건 대통령을 초대하여 스스로 정종을 데워 대접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지만 레이건이 히로시마에 오지는 않았다.


  원폭을 투하한 나라의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다만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미국 내에서도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원폭을 사용 한 것은 국제 룰을 위반한 것이고,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비전투원을 죽였다는 비판이 존재하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간다는 것은 사죄하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죄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미국 병사들은 결단코 정의의 전쟁에 참가한 것이었고、일본에 사죄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이 그 이유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불교전래, 백제 멸망 정도는 알고 있으나, 한일합병이나, 3.1독립운동 등은 가르쳐주지 않았고、그런 역사를 알게 된 것은 모두 한국인이 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또한 일본의 정치가, 군인들이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는가를 그 책들은 기록하고 있다. 결국、대동아 공영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구실이어도, 당시 그것을 뒤집을 만한 문헌이나 책이 나에게는 없었다.

  이것은 사죄가 아니고 속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옛날 육군 소위로 예편한 사람과 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을 만나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는 나의 말을 납득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 하나하나를 모두 부정하며 큰 논쟁으로 비화되고 심한 반론을 받았다.


  논쟁이 끝나고 나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들은 논리가 바르다거나 바르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며 일본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싸운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다, 침략전쟁이다.’ 라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미국인이라도 같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가서 만약 사죄라도 한다면、미국인들이 우리들의 청춘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무엇을 위하여 태평양의 섬에 목숨을 바쳤 싸웠는가? 라는 비참한 심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히로시마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불을 지른 것이다. 그것도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공격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역대 수상들이 하와이를 방문하여 사죄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공격을 당한 국가의 대통령이 일부러 와서 사죄할 필요는 없다.


  세 번째는 포츠담 선언의 13항 째부터 해당되는 것인데、7월24일 일본은 그 내용을 수신했다. 그중에 「일본국에 지금 다음의 전쟁을 종결하는 기회를 준다......이미 미국, 영국 등이 육, 해, 공군으로부터 최종적인 타격을 줄 태세를 갖추었다」고 경고를 했다.


  그리고 24일, 원폭 제조의 총지휘관 그로브스 소장이 원폭투하 명령서를 포츠담에 보냈다. 또한 8월 3일경、히로시마、오쿠라、니이가타、나가사키 부근에 신속하게 투하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충고서에 대하여 일본은 어떻게 대응 했는가? 일본은 완전히 묵살을 했고, 매스컴은 「가소롭다, 대일 강복조건……성전 어디까지나 완수」라고 하며 일본 국민들을 선동한 것이다.


  이 포츠담 선언부터 히로시마의 원폭투하까지 약 반달 간의 시간이 있었다. 원폭투하를 매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연합국은 성실하게 성의를 가지고 일본에 충고한 것이 아닌가? 성의를 무시하고 묵살한 일본이 나쁘다’라는 말을 들어도 반론할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이 포츠담 선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피폭자의 증언을 읽어 보면、「미국이 나쁘다, 미국이 밉다」라는 문언이 많이 보인다. 그런 가운데 소수이지만 「일본 전쟁지도자가 나쁘다」라는 문언도 있다. 1941년에 시작한 이 전쟁의 흐름을 냉정하게 보면, 전쟁지도자가 나쁘다고 하는 말이 제일 납득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최후에 듣고 싶은 것은, 히로시마에 가면 절대로 실패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원폭을 떨어뜨린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세계 역사적인 의의를 남긴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고 반대세력도 있다. 방문이 성공하는 것은 감이 홍시가 되어 자연적으로 떨어지듯이、제일 좋은 때라는 것이 있어야 하고、그리고 일본과 면밀하게 협의하여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절대로 안전하다는 무대도 필요하다.


  하여간、프라하에서의 핵없는 세계의 연설、그리고 노벨 평화상 수상과 그 결실로 일본의 히로시마의 방문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그런 어울리는 일이 아무런 사고도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피폭자로 입장에서도, 히로시마, 일본, 미국, 세계로 봐서도 일대경사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와서 우리들에게 한층 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준 것은 피단협 대표의 쯔보이 씨와 역사학자 모리 씨의 대면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7분 간의 긴 메시지를 끝내고、일본인이 앉아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앞좌석에 쯔보이 씨가 앉아 있었다.


  쯔보이 씨는 작년의 원수폭금지 대회에서 「‘미국 놈들, 잘도 했구나. 이 복수는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고 하는 많은 군국청년들이 격정 속에 쌓여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하였었다.


  만일、대통령에게 사죄를 요구하거나, 거친 말을 한다면, 일본정부로서는 큰 결례가 될 것이고、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의미가 퇴색된다.


  쯔보이 씨가 빙긋 웃는 얼굴로 일어섰다. 쌍방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두 사람 다 같이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쯔보이 씨는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지만 그 왼쪽 검지 손가락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가르키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날、그 이야기의 진상이 알려졌다.

  쯔보이 :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내년 1월에(대통령)그만두셔도 히로시마에 오셔서 다시 보시고 또 들어 주십시오.”
  대통령 : “감사합니다.”
  쯔보이 : “프라하의 그것(핵 없는 평화에의 연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그 평화사상 실현을 위해)피폭자들은 당신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아~70년! 원폭을 투하한 나라와 원폭을 당한 나라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이것으로 양국의 원한이 머나먼 태평양의 저쪽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기사도가 있고、대한민국에는 화랑도가 있고、일본에는 무사도가 있다. 그 나름대로 깊은 전투자의 정신이 있다.


  일본의 무사도에는、예를 들면 타류 시합에서 졌을 때、패자는 「졌습니다」、「이놈、상처를 입히고」 등의 말은 하지 않고 「항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항복한다는 것은 「당신 측의 기술、수련이 격단상입니다」라고 하는 것으로、이에 대한 승자는 「아니、당신의 수련도 훌륭했습니다.」고 한다.


  목숨을 건 전투에 있어서도、진정한 무인이라고 하는 것은、이겨도 져도 유한(원함이나 원통함)을 뒤에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무도의 정신이다. 쯔보이 씨에게 이런 옛 무인의 면모를 본 것 같았다.


  91세의 쯔보이 씨、미국 대통령에게 손가락을 내밀어、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함께 과거의 원한을 흐르는 물에 흘러 보내고、미래의 평화를 위하여 함께 노력하려고 하는 모습은、진심으로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멋진 일화를 보여 준 것이다.


  다음에 오바마 대통령이 만난 사람은 역시 지팡이를 든 79세의 모리 씨이다. 모리 씨는 8세 때에 피폭을 당했다. 히로시마에는 많은 원폭의 그림이 있다. 그림은 사진보다 호소하는 힘이 훨씬 크다.


  모리 씨는 약 40년 전에 한 장의 그림에 못이 박혔었다.
  그것은 아이오이 다리의 난간에 매달려 있는 미국 병사이다. 이 미국 병사는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당시 12명의 미국 병사가 피폭을 당하여 죽은 것은 사실이다.

  그날부터 모리 씨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정말로 미국 병사는 존재했는가? 정말로 히로시마에서 죽었는가? 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고、미국에 전화를 하고、병사의 유족을 찾고, 하루라도 빨리 이 사실을 유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는 그런 모리 씨의 행동에 대해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미운 적군을 위하여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나면 아군도 적군도 없는 것이다.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순사한 귀중한 희생자가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모리 씨는 20년 동안 끈질기게 조사를 하였고, 2년 전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히로시마 시민의 편지와 같이 백악관으로 보낸 것이다.


  「우리들은 대통령에게 사죄를 원하지 않습니다. 히로시마 시민들은 대통령께서 히로시마를 방문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죄가 아니고、히로시마의 땅에서、핵 폐기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여러 번 추진을 하였지만、이외로 방문이 결정된 것은 이와 같은 히로시마 시민들의 편지 덕분일지도 모른다. 모리 씨에게 케네디 주일대사로부터 출석요청이 있었던 것은 행사 이틀 전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오바마 대통령은 모리 씨와 초대면이지만 모리 씨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대통령으로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리 씨 뿐. 그 모리 씨가 일어서서 악수를 하고, 그리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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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의 노고의 그 나날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동시에、자신이 조사한 미국 병사들에 대하여 미국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모리 씨의 절규에 오바마 대통령은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모리 씨、울지 않아도 됩니다」가 아니고、「모리 씨、20년간 우리나라 병사를 찾아 주어 감사합니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 때、체포되어 적국에 와서 자기 나라가 떨어뜨린 원폭으로 죽은 12명의 미국 병사들의 수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원혼들이 맑아지는 날이기도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기 전부터 세계 각국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글들이 있었다. 찬반 양론、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까? 라고 생각하는 문언도 있었다.


  자신들 만의 주장、자신들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는 언론도 있다. 도대체 어떤 자격으로 말하고 있는가? 원폭을 투하시킨 국가의 최고책임자로서 무엇을 위하여 오는가?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는, 또는 국가는, 대통령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두 나라 사이에 일치할 가치가 나온다면 좋지 않은가?


  금년,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 부부가 히로시마에 왔다. 마음을 쿡 찌르는 말을 유머를 섞어 미소 짓는 얼굴로 말하는 무히카 씨에게 전시관을 둘러본 후의 감상을 물었다.


  그러자 무히카 전 대통령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코멘트를 할 수도 없다.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말뿐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평화다, 행복이다, 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던 정치가와 평론가들이 막상 히로시마에 와 보고는 자기의 이상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현실에 말문이 막힌다. 그러니까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와 주신 것만 해도 매우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온다면 그곳에서 한층 더 평화에 대한 구체안이 생길 테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으로 귀국하실 때「이번에 히로시마에 올 수 있어 정말로 좋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시작이다.」라고 하셨다 한다.


  프라하에서 말한 이상론이 히로시마에 와서 현실적으로 되고, 구체화 되어 한 발짝 나아갔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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