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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3호] 사다코의 종이학 그 후의 이야기

관리자 2018-01-18 (목) 07:54 6년전 1984  

사다코의 종이학 그 후의 이야기


관장 高橋公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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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코가 접은 종이학>                                                                          <원폭의 아이의 상>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 주의 미군 태평양 함대가 있는 진주만을 기습공격을 했다. 기습공격이라고 하면 전술적으로 들리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도 없는 공격이기 때문에 「속임수 공격」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격으로 미군 전함 7척 중 5척이 침몰했다. 그 중 한 척이 미국합중국 48번째의 주 아리조나 주의 이름을 따서 건조된 3만6천톤 급의 「아리조나 호」이다. 승조원 1,177명 중 1,102명이 사망했다. 일본은 「기습공격 성공」이라고 들떠 있었지만 미국 전역에 분노의 불을 붙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일순간에 히로시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때 사사키 사다코(佐々木 禎子)라고 하는 2세의 여자 아이가 후폭풍에 2m 정도 날려갔는데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였고 그 후도 건강하게 자랐다. 사다코는 달리기를 잘하여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릴레이 선수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달리기의 1인자이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갑자기 코에서 피가 나고 다리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백혈구가 적어져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병원의 진단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병원에서 우연히 같이 입원한 여고생이 「종이학 천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사다코는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또한 나고야 고등학생들이 보내준 종이로 종이학을 접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 직후 물자 부족으로 천 마리를 접을 종이가 부족했다. 그래서 사다코는 신문지, 병문안 선물 과자 포장지, 약봉지 등 무엇이든 종이란 종이는 모두 종이학을 만들었다.


  하지만 천 마리를 접어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천 마리를 접자고 마음을 정하고 열심히 접었지만 도중에 사다코는 쓰러지고 말았다. 장례식에는 많은 친구들이 왔었다. 양친은 「사다코의 종이학입니다. 관 속에 넣어 주십시오」하며 사다코가 접은 종이학을 관에 넣어 주었다.


  친구들은 ‘부디 다음에 태어날 때는 행복하게 되어 줘’라는 애절한 생각으로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슬픈 이별이었다. 친구들은 「사다코 상(像)을 만들자」고 옛날 급우들이 가두모금운동을 했다.

   그리고 2년 후 한 소녀가 하늘 높이 종이학을 들고 있는 9m 높이의 「원폭의 아이의 상」이 완성된 것이다.
  1958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그 상 주위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으로 가득 채워졌고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다코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되고 점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원폭 투하를 명령한 해리 트루만 미국 대통령의 손자인 클리프톤 트루먼 다니엘은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가지고 온 한 권의 책을 읽어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책은 원폭의 후유증으로 죽은 「사다코의 종이학」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사다코가 죽고 40년 후의 책이다. 손자 다니엘은 자신의 조부가 원폭 투하를 명령했지만, 그것은 미국, 일본의 군인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하고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으로 조부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폭 투하의 뒷면에는 12세의 소녀가 피폭 10년 후에 죽었다고 하는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연이 되어 2010년에 사다코의 오빠로부터 「사다코가 접은 종이학 중 하나입니다.」하며 작은 종이학을 받았을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고 피폭 67년째인 2012년 8월 6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게 된다.


  다니엘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피폭자를 만나는데 서로 적대적인 원수관계를 넘어 「핵 폐기를 위하여 함께 나아가자」는 굳은 악수를 했다. 또한 작은 종이학은 다니엘의 노력으로 하와이 진주만의 「아리조나 기념관」 안에 전시하게 되었다. 이 아리조나 기념관은 전함 아니조나의 기금으로 건립되어 있다. 그리고 아직 인수하지 못한 미국 해병의 유해가 바다 속에서 잠들고 있다. 지금도 아리조나 호에서 오일이 해면에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아리조나 기념관의 제일 깊숙한 곳에 위령 공간이 있고 1945년에 아리조나가 공격당해 전사한 해병 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아리조나에서 흘러나온 오일은 「검은 눈물」, 「아리조나의 눈물」이라고 하며 아리조나호의 생존 해병 전원이 죽을 때까지 이 오일은 계속 흘러나올 것이라고 한다. 이 아리조나 기념관에는 매년 백만 명이 방문하고 있는데 대부분 미국 사람이고 기습 공격으로 원통하게 죽어간 병사들의 관계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아리조나 기념관은 반일을 위한 기념관이라고도 한다.

  그 기념관에 「사다코 종이학」이 조용히 안치되어 있다. 트루먼 다니엘 씨를 통해서 안치된 것이다. 이 종이학은 불과 1cm 밖에 안되는 대단히 작은 것이지만 이 작은 종이학의 부패를 막기 위해 6만 5천달러(약 6천5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한다. 1cm 크기의 사다코의 종이학은 「원폭이 과연 무엇을 가져오는가? 두 번 다시 핵을 사용하는 전쟁은 하지 마십시오.」라고 한 일본의 작은 체구의 소녀가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가면 종이학은 「원폭의 아이의 상」 바로 옆에 있으며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아래의 거북이 머리에도 장식되어 있다. 종이학에 둘러싸인 「원폭의 아이의 상」 아래에 작은 석비가 하나 있다. 그곳에는 「이것은 우리들의 외침입니다. 우리들의 기원입니다. 세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하여」라고 새겨져 있다.


  사다코가 죽는 날 아침, 아버지에게 「오차즈케가 먹고 싶다」 고 했다 한다. 오차즈케란 밥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위에 김이나 우메보시 등을 얹어 먹는 밥을 말한다. 아버지는 아마 자기 딸의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병원 주변 마을 식당에 가서 맛있는 오차즈케를 부탁하여 사다코에게 주었을 것이다. 사다코는 그것을 맛있게 먹고 “아~ 맛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간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죄도 없는 순수한 한 소녀가 접은 종이학이 세계 각지에서 평화의 심벌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들도 이런 순수한 평화의 마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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