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하의 히로시마 · 나가사키
중일 전쟁이 시작되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도 많은 병사가 전장으로 나가게 되어 병사를 배웅하는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시민의 생활은 모두가 전쟁 일색이 되고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생활필수품이 부족해지고 생활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공습을 상정한 훈련(히로시마)
공급에 대비하여 소화 훈련 등이 종종 있었습니다.
1940(쇼와 15)년 무렵 기증/다나카 미치루 씨
유골을 안고 있는 병사들(히로시마)
전쟁터에서 사망한 병사는 유골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1938(쇼와 13)년 무렵 제공/히로시마 시 문화 진흥과
병사를 배웅(히로시마)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병사는 전쟁터로 보내지는 남성이 증가했습니다. 가족이나 인근 주민이 깃발을 세우고 그들을 배웅하는 광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1937(쇼와 12)년 무렵 제공/이스즈 하지메 씨
노보리초 초등학교의 학동 집단 소개(히로시마)
심해진 공습을 피하기 위해 초등학교 3~6학년은 부모 슬하를 떠나 교외의 절 등에서
집단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1945년(쇼와 20)년 제공/히로시마 시 공문서과
나가사키 상업학교 보국대 농작업(나가사키)
식량이 부족해지자 교정 등에도 농작물을 심게 되어 학생들도 농작업을 했습니다.
1942(쇼와 17~18)년 무렵 제공/나가사키 피폭 사진 조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