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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빛을 받지 못하는 비애

관리자 2018-01-13 (토) 12:08 6년전 893

  따뜻한 빛을 받지 못하는 비애

 

  한국에서는 피폭이라는 실체를 모르니까 피폭으로 인해 상처에서 나오는 켈로이드 증상을 나병환자 증상으로 오해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폭병이나 나병은 사회의 이해가 없으면 차별적인 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봉사활동 태양회는 20년 전부터 피폭자 중심의 사회봉사활동을 해왔지만 한국 태양회 회원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태양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관련된 글은 한 줄도 없다. 피폭에 대해서는 일본도 한국도 숨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40년대 일제강점기 때 一視同仁(일시동인)’라고 천황이 일본인도 한국인도 같은 시선으로 본다는 뜻인데 실제는 차별은 천지만큼 차이가 있었다. 강제연행 당하고 원폭피해를 입었지만 피폭자는 한국에 돌아와도 일본에서 귀국했다고 차별당하고 좋은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힘든 생활을 했다. 이런 식으로 피폭자는 3~4배 더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20년 동안 피폭자 보호에 국가적인 체제가 완벽하게 만들어졌지만 한국에 돌아온 피폭자들은 약 40년 동안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버림을 받아왔다. 한국피폭자가 피폭자수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이다. 그리고 이 수첩을 받기 위해 일본까지 가야하고 일주일간의 조사도 필요했다. 히로시마 시청에 가면 히로시마시의 원폭투하 된 곳에서 2km, 4km 내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두 사람의 증인을 세우라고 했다. 50~60년 전에 살았던 곳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피폭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이며, 대부분 침대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피폭자 입장에서 히로시마까지 가는 것조차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2003년에 피폭자협회와 한국 적십자사는 일본정부에 대해 이미 협회회원으로서 피폭자로 인정받은 피폭자는 무조건 피폭자수첩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것을 거절하였다. 현재 한국 피폭자는 3,000명 정도이지만 수첩을 소지한 피폭자는 약 반 정도라고 한다.

 

   원폭이 투하된 지 70, 일본에서는 국가와 사회, 국민도 이해를 하고 사회복지도 충분히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와주는 단체도 거의 없고 피폭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본격적인 조사는 원폭이 투하 된지 40년이 지난 80년대 이후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인 피폭자에 관한 일본재판소에서의 소송이 그 후 10~20년 계속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양국에 기대하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피폭자는 재판소에 호소하는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10~20년 사이에 집단소송을 제기한 피폭자의 절반정도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승소를 했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 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한국 피폭자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그것은 단지 일본 피폭자와 똑 같은 치료와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폭에 대한 봉사단체는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많다. 그런 단체가 한국인 피폭자가 많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한국피폭자에게도 봉사를 하려고 한국에 오면 일본피폭자와 전혀 다른 차원의 생활수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 제일 필요한가를 생각하면 역시 치료이다. 그렇지만 1985년 까지 일본피폭자와 같은 수준의 치료를 받은 한국피폭자는 불과 260명밖에 없다. 그 이후 일본에 가서 치료 받을 수 없게 되고 국내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원폭이 투하된 지 70. 한국인 피폭자 수만 명 중 제대로 치료받은 피폭자는 수백 명,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피폭자들, 그 사람들의 고통, 절망, 희망을 일본인으로 피폭을 당하게 한 일본, 그리고 모국 한국은 이 피폭자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근년에 한국정부가 피폭자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은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그러나 벌써 피폭자의 평균연령이 80세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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