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人 原爆犧牲者의 悲哀(한국인 원폭희생자의 비애)
처음에..
2015년 8월 우리나라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일본으로부터 독립된 축하의 날이지만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생각조차 떠올리기 싫은 피폭을 당한지 7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이 70주년에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하려고 한다.
「왜?」 「어떤 이유로?」
지금부터 이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여러분은 원폭의 무서움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일본의 히로시마에 단 한 개의 원폭이 투하되었는데 그해 12월까지 14만 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국인은 5만 명 전후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은 한번 피폭되고 원폭병이 발병하면 평생 낫지 않는다. 즉 죽을 때까지 병을 안고 살아야 되는 무서운 병이다.
그리고 피폭자들이 어떻게 죽어 갔는가?
일본에서는 단가(短歌)라 하는 5⦁7⦁5⦁7⦁7의 운율로 짧은 시를 짓는데 31글자로 자연현상이나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문학이 있다.
그 31글자로 표현한 원폭투하 직후의 시가 있어 소개하겠다.
(번역 상의 문제로 글자 수가 달라짐)
꿈인가 현실인가
눈앞에 귀까지
입이 찢어진
사람 얼굴이 있다.
원폭투하로 일어난 후폭풍은 1초에 약 4km를 달린다. 이 후폭풍은 3천도 이상 되는 열을 뿜고 있으므로 폭심지 가까이서 정면으로 후폭풍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죽어 갔다.
팬티도 입지 않고
검게 탄 사람
여자일까?
가슴을 축 늘어진 채로
울부짖으며 걸어간다.
폭풍에 의해 일순간에 옷이 타버리고 이런 사람이 폭심지 주변에 가득 차 있었다.
굵은 뼈는 선생일까
그 옆에 작은 두개골이 모여 있다.
이것은 폭심지 1km 이내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든 어린아이들이 뼈만 남았다. 너무 불쌍해서 선생님을 중심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린이의 뼈를 모아둔 것 같다.
석탄이 아니다.
검게 탄 사람을
수북하게 담은
트럭이 달려간다.
3천도 되는 열풍을 맞으면 몸의 수분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보다 더 폭심지 가까이는 4천도~5천도가 되는데 이때는 육체는 순식간에 검정 숯처럼 된다. 그 사체를 담은 트럭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처참한 죽음, 원폭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연상시키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처참하다고나 할까 도저히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글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처절한 죽음을 당한 한국인이 5만 명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비참한 죽음을 나의 가족이 절대로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기자단의 「원폭투하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예스(그렇다)」라고 대답을 했다 한다.
「일본에 원폭을 투하 한 것에 대하여 미국은 사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노(아니오)」였다.
지금 세계에 1만 6천기의 핵무기가 있고 북한에서도 핵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이 세계 최초의 피폭국이라 할 수 있는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원하고 또 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