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一 .개식사 (사회)
一 .국민의례
一 .애국가 제창
一. 내빈소개
一. 추도사 일본대사관
일본국회의원
한국국회의원
一.반전평화의 제창 한국피폭자대표
一.헌 다
一.추도가(당신 안녕)한국 평화봉사단 해모음 합창단
一.헌 화 대표75명
一.폐식사 사회
제2부
一.개식사 사회
一.원폭투하 영상
一.반전평화의 제언 일본대표
대만대표
한국대표
一.민요
一.일본무용
一.대만무용
一.살풀이
一.메시지 소개
一.시 낭독
一.합창
一.노래(특별출연)일본가수
한국가수
一.기타 연주
一.소극
一.사사 관장 高橋公純
一.폐식사 사회
※장소、시간 미정(천 명 집합 장소 물색)
※한일 다문화교류
※8월6일 밤、한일 카라오케 교류회
※기타
※ 상기 식순은 제1안만 우선 게재하였으며 변경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무궁화 10호를 쓰기 시작할 무렵, 한국은 3.1만세운동 100주년으로 한국 각지에서 성대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만세운동에 대하여 당당히 다른 목소리를 낸 일본 사람이 있습니다. 대정 데모크라시 지도자로서의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와 민예 운동의 창시자라고 할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입니다.
두 분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입니다만, 야나기 무네요시는 3.1만세 운동 때는 겨우 30세로, 일본 동양대의 교수로 되어 「조선의 친구에게 바치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일필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처음 시작하는 글은
“나는 요즘 대부분 조선의 일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당신들의 심정과 외로움을 알 때 남모르는 눈물이 내 눈에 고인다....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약간의 따뜻한 인정이라고 항상 생각한다...그러나 인정에 어긋나는 기세가 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이와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만연해지기만 하여 마음이 본의 아니게 찢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번갈아 가는 무력과 위압으로 끝까지 인정이 짓밟힌 조선의 역사를 생각할 때 나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보통 정치를 비판할 경우, 대부분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고 내가 제일 정의롭다고 하는 언론이 많습니다만,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 논조는 동대 철학과를 나왔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5년 후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민족미술관」을 개관합니다. 장소는 한반도를 통치하는 일본총독부를 건설 공사 중인 경복궁 안에, 지금도 남아 있는 「집경당(緝敬堂)」입니다.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2대 하세카와 코도(長谷川弘道)의 무단정치는 안 되겠다, 문화, 문민정치로 바꾸겠다고 하며, 인격, 인덕을 겸비한 사이토 미노루(齊藤実)가 그 다음 총독으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에게 문화의 마음을 가지도록 미술관의 개관은 좋지만 일본민족의 총본산인 일본총독부의 바로 뒤에 「조선민족」 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곤란하니까, 조선이라는 두 글자를 지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무네요시는 이런 저런 변명을 계속하며 조선의 두 글자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문장은 다정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심정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조선민족 미술관의 개관을 위하여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은 무네요시의 부인, 카네코(兼子) 여사입니다. 현 도쿄의 스미타에서 태어난 나카지마 철공소의 딸로서 도쿄음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무네요시와 열렬한 연애로 맺어진 사이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그 목소리는 천재라고 평가되어, 2,3년 사이에 야나기 카네코의 독창회가 열릴 정도로 되어 있었습니다. 슈베르트의 「들장미」 「보리수」 비제의 「칼맨」 리스트의 「로렐라이」. 결코 어려운 노래만은 아니고 우리들이 중학교 시절에 배운 노래도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야나기 카네코 여사의 CD를 한 장 가지고 있는데, 천상의 목소리는 이런 것인가? 할 정도로 감명을 깊이 받았습니다. 틀림없이 조선 사람들은 카네코 여사의 노래에 감명받았을 것입니다.
조선민족미술관 개관의 약 70%는 카네코 여사의 독창회의 수입인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부부는 조선을 순회하면서 독창회를 가졌는데 그 수입은 모두 조선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무네요시의 「무력과 위압으로 짓밟힌 조선의 역사를 생각하면 나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고 고고하게 조선을 사랑한 무네요시와 부인인 카네코 여사의 이러한 도움도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분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3.1독립운동으로 무저항으로 탄압을 받는 조선인 측에 서서 쓰신 「조선의 친구에게 바치는 글」 중에 「조선의 일」이나 「조선의 역사」를, 「한국인 피폭자의 일」, 또는 「한국피폭자의 역사」로 고쳐서 읽어 본다면, 조선 사람을 한없이 사랑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마음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관장 高橋公純
<2018. 8. 6. 추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