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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10) 피폭자와 만든 추억

관리자 2019-10-11 (금) 15:18 4년전 1790  


  한국피폭자와 함께 걸어온 30여 년 동안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 합천에 와서 처음 피폭자와 만나고 안 지부장의 “다카하시 씨도 거짓말합니까?” 이 한마디 말로 인하여 1년 후인 1989년부터 매년 5월 야유회와 8월 추도식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야유회는 2011년까지 지원 이후 다른 단체에서 지원, 추도식은 지금도 지원중)
  나는 종문에 본응사 주지 31대의 직권을 반납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종문의 한 규정에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 자유롭게 갈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훌륭한 승려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일의 역사를 보면 훌륭한 일본 사람으로 되는 것도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한국 사람과 만날 길을 택한 것입니다.
  당시 53세인데 25년 전 28세 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언젠가 나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와서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한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스피드 시대로서 7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가정하면 3×7=21년, 세 번이나 강산이 변할 때까지 전력을 다하여 살아간다면 이 몸은 20년 정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 중 마지막 20년을 한국을 위하여 진력하면 조금은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3+21=74. 내가 죽을 때는 74세라고 계산하고 있었는데, 지금 74세가 지나도 태평스럽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나의 활동이 부족하다는 뜻일까?
  그 53세의 5월, 처음으로 합천지부 야유회에서 한국인 피폭자를 만난 날, 나의 인사말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마치자 바로 노래자랑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한국 민요가 많았습니다. 비도 내리고 조명도 어두침침하고 그렇게 성황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습니다. 문뜩 한 곳을 바라보니 단상 한 곳에 알루미늄 큰 통이 5, 6개, 세탁판이 5, 6개. 스덴 수저가 5,6 개 등등 생활용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경품인 것 같아서 다음부터는 30명의 경품을 제가 준비하기로 했는데 해가 갈수록 경품이 50명분, 70명분, 100명분으로 점점 불어났습니다.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경품이 우산으로 진열대 위에 100개를 올려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번호표를 받아 줄을 지어 순서대로 차례차례로 노래를 부르면 우산 하나씩 드렸습니다. 그러자 제일 처음 부른 사람이 여섯 번째의 줄에 서 있다가 또 불러 우산을 또 받아가고 또 앞에 부른 사람이 10번째의 줄에 억지로 서 있다가 부르고 또 받아가고 하더니 20명 쯤 불렀을까? 갑자기 경품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너도 나도 하며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르니까 안 불러도 하나 달라’고 하니 순식간에 우산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값비싼 우산도 아닌데 앞으로 장마철이 오니까 농가에는 이런 우산이 필수품인가보다 하고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어느 해의 야유회에서 휠체어를 타고 오신 어른이 한 분 계셨습니다. 휠체어도 말끔하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교양도 있어 보입니다. 그냥 무심코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 옆을 지났는데 갑자기 그분이 화난 목소리로
  “너! 일본 사람인가?!!”
  “네, 일본 사람입니다.”
  “그래, 일본 사람이구나. 야! 일본 사람!! 나는 일본 사람 덕분에 다리도 못 쓰고 내 청춘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이 50년 동안 억울하고 분함 속에서 살아왔다. 일본 사람!! 내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나에게 사죄하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댄 후 천천히 얼굴을 들었습니다. 이미 그분의 양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하고 그분의 두 손을 맞잡고 있을 때,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왔습니다. “이제 괜찮습니까?”
라고 재차 묻자
  “고맙다!! 고마워!!”하며 “당신 덕분에 50년 동안 내 가슴속에 쌓여 있던 원함이 이제 겨우 사라졌다. 일본 사람 만나면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해서 못했는데 고맙다, 고마워~~!!”하며 엉엉 울고 계셨습니다. 순간 나도 오랫동안 피폭자에게 봉사 활동을 잘 해 왔다는 뿌듯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봉사 활동을 하는 자, 배반당하고 비방 당해도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토로하는 그분의 모습에 나도 만족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거만하게 구는 것보다 무릎을 꿇는 것이 더 좋다, 내 몸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만 궁지를 빠져나와 사물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말은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쉬울지도 모릅니다.
  「용서한다는 이 말이 한일 친선의 가교를 만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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